[2020미얀마/양곤] 4. 떠나지 않은 도시를 그리워 하는 시간

점심을 먹은 뒤에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점심 이후의 일정은 너무 더운 바깥에서 조금 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시장으로 들어서는 거였다. 누구나 그렇지만 점심을 먹은 뒤에 잠깐의 토막잠은 참 소중하다. 제대로 눕지 않는다면 역류성 식도염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하루의 고단함은 점심 후 잠깐의 낮잠과 알람이 울린 뒤의 10분 아침잠 해결해주지 않던가 싶다. 지난 20년 상반기는 많은 것들이 변했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시기였다. 경험상 3월과 4월의 쑥스러움을 걷어내고 슬슬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있어야 하는 교실에는 아이들이 오지 않았고, 모니터 너머로 아이들을 만나야했다. 썩 좋은 선생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성장을 옆에서 도와주고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이 힘들었던 점으로 보아 제법 선생티를 내고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시장에 널부러진 의자를 붙잡고 앉아 미얀마 밀크티를 한 잔 시켜놓고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도 별미다. 물론 내가 다른 사람을 쳐다보는게 아니라 ‘왜 저기 쟤가 앉아있어?’라는 시선을 더 많이 받은 것 같지만 보족시장 근처에 건물이 만들어낸 그늘에서 조금씩 더워지는 오후를 만끽하며 뜨끈한 러펫예 한 잔. 마셔본 사람만 알겠지. 물론 이렇게 말해놓고 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왔는데 과일주스를 마시지 않을 수가 있겠냐며 수박주스를 시켜먹긴 했지만 당장 밤에 장거리 이동을 앞두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오후는 그런 시간이다. 인도 자이푸르를 걸어다닐 때 만났던 오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따사로운 햇살에 구매력을 지닌 소비자 방문이 뜸해질 그럴 때, 노천 카페에는 더워죽겠는데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짜이를 마시기도 했고, 옷가게와 향신료가게, 그리고 농기구를 파는 가게에서도 뒤늦은 점심을 손님이 올까봐 빠르게 먹곤 했다. 가는 곳이 어디든 그 또한 사람이 사는 동네이고 비록 서로 믿는 신과 사용하는 언어, 옷차림은 다르지만 우리들 사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더라.

보족시장은 넓은듯 넓지 않은듯 했다. 그래도 나름 관광객들이 많이 찾기도 하고 기념품과 옥 제품을 팔고자 호객하는 사람들, 엽서를 들고 다니며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다른 관광지에 비하면 한결 덜 하다. 갤러리도 많아 그림을 보는 재미도 제법 있었는데 조금 더 가면 갤러리가 모여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옛 홍대 거리, 그런 곳이 있어 처음부터 유명한 미얀마 작가 때문에 미얀마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방문한다고 했다.

맛보기로, 혹은 보너스로 얻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쑥스러운 붕 뜬 하루였는데 터키를 여행할 때도 처음 도착한 이스탄불에서의 씻지도 못한 하루가 그랬고, 5년 전 태국과 라오스를 여행할 때는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버스터미널에 간다고 정신없었으니 그에 비하면 나만의 페이스를 점점 찾아가고 있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 미얀마, 특히 양곤을 여행하면서 좋았던 것은 양곤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그런 도시이고, 미얀마의 특성상 다양한 문화가 만나는 곳이여서 한민족의 일관된 나라에서 살아온 내겐 좋은 인상을 줬다. 어떻게 보면, 획일화되고 개성을 잃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국내나 국외를 돌아다니는 이유도 여기에서 나온 게 아닐까? 일본의 출근길 사진을 한 장 본 적이 있다. 사진 속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흰 셔츠에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유니폼 안에 그 사람의 자아를 가둬둔 거 같아서 답답하기도 했고 “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나 의아하기도 했다. 맨날 눈치도 안 보고 무지개색 반팔티에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내가 할 소리는 아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