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랜만에 대화가 통하지 않는 곳을 서성이다보니 외로움이 쉽게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여권에 도장을 찍은 것이 2015년이었으니 5년 만의 여행 첫 날은 조울증 환자처럼 서성거렸다. 돌아다녔던 거리를 다섯 번 쯤 돌아다녔을까, 이제는 익숙해져 정이 들려고 하는 도시를 떠나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여행에서 첫 번째 이동은 항상 긴장을 유발한다. 특히 지난 번 여행은 주로 레에서만 거주하는 여행이었으니 몇 번 안되는 이동도 조금 부담이 되었다. 우버를 잡아 러시아워를 뚫고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에서 출국날에는 조금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이내 생각을 멈췄다. 2주가 조금 넘은 나중에 일어날 일을 벌써부터 걱정하다니, 여행을 다니지 않는 사이에 나도 걱정쟁이가 되었나보다.
KFC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버스회사 사무실에서 멍을 때리고 있는데 VIP티켓을 끊은 사람은 위에 라운지에서 쾌적하게 있을 수 있다고 직원이 알려줬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데 알려준 그 마음이 고마워서 버스를 타러 나설 때 일부러 눈을 맞추고 잘 있으라고 인사를 했다. 미얀마는 남에서 북으로 꽤 길쭉한 모양인데 양곤에서 바간까지는 거리가 제법 멀었다. 밤 9시에 출발한 버스는 11시가 지나 왠 휴게소에 도착했는데 재미있었던 것은 도난 방지 때문에 휴게소에 머무르는 30분동안 차량에 남아있을 수가 없었다. 겨울에서 갑작스럽게 넘어온 여름의 밤공기를 마시며 화장실도 다녀오고 스트레칭을 하는데 차가 너무 많아서 버스를 찾지 못할까봐 좀 특징적인 사람들을 기억해놨다가 겨우 찾아올 수 있었다.
바간 버스터미널은 뉴바간과 올드바간보다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고, 대다수의 편의시설이 모여있는 주거지로 이동하려면 꽤나 비싼 가격을 주고 택시를 타야 했다. 의외로 정가제 가격이 적혀있었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심지어 바간은 우버 서비스 지역이 아니라 택시기사와의 가격 협상이 상당히 중요했다. 버스가 도착하면 여행객들과 택시기사들의 기싸움이 시작되는데 아무래도 디우 어시장에서 써먹었던 스킬을 사용할 때가 왔다. 원래 경제라는 건 수요와 공급 아니던가, 아침이라 시간도 많은데 배낭을 깔고 앉아 눈치를 살피고 있자니 마찬가지로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이 서성이는 것이 보인다. 처음에 1인당 1만, 1만 5천, 2만짯처럼 호가를 치더니 점점 가격이 내려가 3명, 각각 숙소에 드랍해주는 조건으로 모두 다 합해 1만 2천짯에 흥정할 수 있었다. 중간에 5일동안 이용할 수 있다는 바간 지역 입장권을 강매당하고 서로의 숙소로 흩어졌다.
바간에서의 숙소는 올드 바간과 뉴 바간 사이에 있는 바오바베드 호스텔을 사용했는데 체크인보다 일찍 도착했음에도 아침도 주고 짐도 맡겨놓을 수 있었다. 유러피안 갬성이 넘실거리는 게스트하우스에서 8인 혼성 도미토리를 사용했는데 어쩌면 도미토리를 찾아다니는 마지막 여행이 될 거 같아서였다. 아무튼 옥상에서 빵과 커피를 마시면서 멍 때리다가 바간에 오면 꼭 해야한다는 파고다 탐험을 하고 오후에 체크인 후 일정을 보내기로 했다.
바간 여기저기에는 이렇게 파고다가 널려있는데 유명하고 크고 아름다운 것부터 몇 해 전 있었던 지진으로 손상되었으나 복구되지도 않은 돌무더기들도 있다. 유적 관리를 여태껏 안한 것은 아니지만 붕괴 위험과 문화재 보호를 이야기하며 파고다 꼭대기에 오르는 행위를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황무지 속에서 사람들은 아직 막히지 않은 새로운 파고다를 찾아떠나는 파고다 슈팅을 계속하고 있었다.
첫 날이라 그냥 근처에 있는 파고다를 둘러볼 겸 걸어다니는데 햇살이 점점 강해지면서 이건 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파고다는 벽을 타고 위로 올라가야 했고, 내부에 계단이 있는 커다란 파고다는 왠만하면 자물쇠로 잠겨있었다. 예전에 서울에서 전세를 구하러 돌아다닐 때, 지금도 그렇지만 전세 매물이 참 귀해서 발품을 팔던 생각이 났다. LH에서 갓 시작한 대학생 전세임대지원을 받게 되어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돌아다니는데 처음 시행하는 것이다보니 임대인도 공인중개사도 난색을 표했다. 파고다마다 만들어진 시기가 다르고 건축적인, 예술적인, 또 종교적인 가치가 숨겨져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오를 수 있는 구조물을 찾고 있다니!
계속 걸어다니기에는 앞으로의 여행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큰 길로 나오면서 근처에 있는 파고다들을 살펴보았다. 숙소로 돌아가 가이드북이라도 찾아보고 조금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서초역 반지하 전세 자취방과 망우역 펜션 벽지 오각형 6개월 월세 집, 구파발역 이룸채 행복주택처럼 어디엔가 나를 위한 집이 있을테고 그러니까 바간에서는 너무 욕심을 내지 말고 내 마음에 드는 파고다를 골라보자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