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미얀마/바간] 6. 오를 수 없는 탑과 바간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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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간에서 이바이크를 타지 않는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으로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자유와 스피드광이라면 나름 쭉 뻗어있는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며 바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바이크를 반납하기 전까지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실 수 없는 것과 운전 미숙으로 인한 사고는 단점으로 도사리고 있다. 물론 지역 특성상 먼지가 많지만 인도 델리에서 코를 풀었을 때의 충격과는 거리가 멀고, 택시는 매우 비쌌으며 어쨌든 무슨 짓을 해도 먼지는 마시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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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바간에 도착한 첫날이자, e바이크를 타지 않은 유일한 날이었기에 점심에 근처 식당에서 맥주를 시키는 호기를 부렸다. 바간에서는 이후 저녁에만 맥주를 마셨지만, 다음 도시부터는 점심부터 꼬박꼬박 거르지 않고 맥주를 마셨다. 미얀마 맥주에서는 병뚜껑 이벤트를 하고 있었는데 병뚜껑을 따면 안쪽에 무늬가 그려져있었다. 일확천금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기분 좋게 맥주를 한 병 더 받을 수도 있었으며 맥주값을 할인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Thank you라고 쓰여있으면 기분만 좋아야 했기 때문에 좀 꺼려지기도 했다. 첫 번째 바간 맥주는 꽝이었다. 병뚜껑을 보고 맥주를 마시는데 이게 바로 원효대사의 해골물인가, 괜히 맥주가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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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올드 바간에서 조금 더 아웃백으로 접근했다. 물론 걸어서 다녔기 때문에 속도는 느렸고 구시가지와 신 시가지를 이어주는 뻥 뚫린 도로 근처에 있는 사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조금씩 뉘엿뉘엿한 것이 느껴졌다. 숙소 근처에서 비포장도로를 따라 쭉 걸어올라 와서 만난 아로더삐 사원은 현지 사람들도 꽤 많이 찾아오는 장소였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이 장소에서 사람들은 하늘을 찌를듯한 첨탑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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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바빌론 탑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하늘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던 그 마음은 순수함에서 시작되었지만 사실 하늘에 가깝든 멀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바빌론 탑은 무너졌고 이후 유럽의 고딕 양식으로 이어져 신앙을 가시화하곤 했다. 이곳 바간에서도 수많은 사원 위에 올라가 더 높은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으면서 안전사고 등의 문제로 사원 위에 오르는 것을 금지했고, 오름직스러운 곳에는 오르지 말라고 팻말이 붙어있거나 쇠창살과 철조망, 그리고 자물쇠가 길을 막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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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에 선셋 포인트를 검색하다 보면 다양한 선셋 포인트가 나타나는데 어떤 곳은 해를 보기 어려운 곳도 있고 어떤 곳은 사람들이 원하는 그림이 잘 나오지 않기도 한다. 가장 가까운 포인트를 찍고 걸어서 가려는데 아무래도 걸어가다 보니 해넘이가 더 빠를 것 같아 괜히 발걸음이 빨라졌다. 빠르게 지나가는 이바이크와 택시, 심지어 마차를 보며 마음에 방망이질을 하고 있을 때 내 옆으로 왠 한국 사람이 오토바이를 세우더니 타라고 했다. 아, 이게 한국의 정이구나. 나를 등 뒤에 태운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운전을 했고,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프레임을 잡고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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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다른 주인공을 뒷자리에 태우고 속도감을 느끼며 달린다. 포장이 된 도로라면 모를까, 미얀마에서, 특히 바간에서 그런 그림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면서 인도에서 내 뒤에 태워주었던 누나가 떠올랐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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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갔다면 이미 해가 다 져서 도착했을 텐데, 고맙게도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 전에 포인트에 도착했다. 항공사 광고에 나왔던 것처럼 사원이 엄청 가깝고 해는 엄청 크고 그런 장면은 아니었지만 베풀어진 정이 고마웠다. 말없이 언덕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 바간에서 첫 번째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이곳 바간에서는 아침에 해 뜨는 것을 보고 저녁에 해가 지는 것을 보는 게 큰 이벤트다. 그 이벤트를 위해서 목이 좋은 곳을 찾아 매일 달리는 것, 그게 어쩌면 이곳을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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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하늘에 옅은 붉은 기가 더 옅어지고 있을 때, 언덕을 내려와 다시 길을 걸었다. 도로 위에는 스쿠터와 택시, 마차가 뒹굴고 뽀얀 모래 먼지가 눈으로 코로 들어왔지만 새로운 도시에서 처음 만난 일몰에 괜히 벅차올라서 저녁 식사를 하며 맥주를 두 병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