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간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무리 날이 좋아졌다 한들 하루 종일 햇빛을 맞으며 걸어 다니다 보니 (점심에도 마셨지만) 맥주 생각이 간절했다. 가이드북은 가져오지 않았기에 적당히 구글 평점을 보고 방문한 식당에서 앉기도 전에 맥주부터 시켰다. 테이블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원래 앉아있던 사람들과 눈 마주치면 합석하는 게 아니라 고개나 까딱해 보이는 참 좋은 것이다.
어떤 가게를 들어가도 땅콩을 내어주는데 그 땅콩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도 바라나시 가트에 앉아 자외선에 피부가 폭삭 늙는 줄도 모르고 앉아있었던 때, 항상 머리에 땅콩을 지고 가는 아저씨가 나타나면 한 봉지 사 먹곤 했다. 그때는 혼자 앉아있어도 서로 다른 이유로 그곳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보트를 셰어하든 은밀하게 가져온 술을 나누든 했지만 아직까지 이곳 미얀마에서는 혼자가 아닌 적이 없다.
아주 멀리 일몰을 보고 아주 멀리 걸어 맥주 두 병에 저녁을 깨끗하게 비운 뒤, 숙소로 바로 들어가고 싶진 않아 살짝 오른 취기에 발길을 재촉하니 저쪽에 사원이 하나 보인다. 술에 취해 사원에 들어가면 왠지 불경한 것 같아 한 바퀴 더 돌고 밤이 무르익은 사원에 들어갔다. 바간과 냥우에 있는 도로는 우리나라처럼 인도와 차도 구분이 확실하지 않아 특히 밤에 걷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조금 밝은 길목에는 항상 일확천금을 노리는 택시 아저씨들이 다리가 아프거나 밤길이 무서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쉐지곤 파고다는 바간 지역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고도 하고, 미얀마 다른 지역에 있는 파고다의 원형이며 그래서 어머니라고도 한다. 미얀마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 중에는 불교 성지를 돌아보기 위해 오기도 할 정도로 미얀마와 불교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 불교가 미얀마 역사에 더 가까이 다가온 곳이 이곳 바간이고, 바간 왕조 최초의 사원이면서 시작점이기도 하다. 사실 이 이야기는 바간에 있을 때는 하나도 몰랐고, 나중에 낭쉐에서 보트 투어를 함께 했던 친구에게 들었다. 미얀마에 도착한 지 3일 째였지만 느긋하게 밤 산책을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밤이 늦었지만 경내에는 순례객들이 찾아 저마다의 신을 찾고 있었다. 쉐는 황금, 지곤은 모래언덕을 뜻해 황금의 모래언덕이라고도 일컫는 쉐다곤 파고다는 냥우 인근을 걷고 있을 때 쉽게 눈에 보여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와 같다. 길을 갈 때 방향을 찾기 위해 쉐지곤 파고다를 바라보는 반면, 자신의 인생길에서도 방향을 찾고자 사람들이 모여든다.
강렬했던 낮의 열기가 가신 경내에는 사람들이 제자리에 앉아서 혹은 주변을 거닐며 밤의 여유를 만끽했다. 인도 여행할 때 만났던 사원에서 신을 찾아 들어가면서도 신발의 안위를 걱정했었다. 하지만 그 때로부터 시간이 지나서일까, 아니면 미얀마여서일까, 신발 걱정은 접어두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쉐지곤 파고다를 맴돌았다. 오늘은 스쳐 지나가는 이방인으로 왔지만 바간을 떠나기 전에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이곳에 살았던 사람으로 남길 바라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