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인도] #3. 가트에 걸터앉아, 바라나시

2013. 1. 7. ~ 2013. 3. 1.

#3. 가트에 걸터앉아(2013. 1. 9. ~ 2013. 1. 16.)

바라나시, 인도


바라나시에서 머무는 동안 250여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 시간의 기록을 가트, 골목 그리고 사람으로 나누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성지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갠지스 강을 찾아와 씻기도 하고 죽음을 기다리다 갠지스 강가에 있는 화장터에서 한줌 재가 되기도 한다. 역설적인 것은 죽음에서조차 부와 빈으로 갈린다. 부자는 땔감을 넉넉하게 사용해 자신의 몸을 빠짐없이 잿가루로 만들 수 있지만 거지는 땔감이 부족해 타다만 시체가 되어 갠지스강을 따라 떠내려간다. 신성시여기는 행렬은 갠지스강가를 거닐고 뿌자 의식에 참석하고 배를 타고 갠지스를 둘러본다.

 

 

바라나시에 도착한 다음 날, 새벽부터 일출을 보겠다고 갠지스 강가로 나왔다. 게스트하우스 할아버지가 해가 뜨기도 전에 돌아다니면 목이 잘린 채로 발견될 것이라고 겁을 줬지만 일출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하니까 부지런한 청년이군이라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끝을 흘리는 것으로 보아하니 너의 그 기행이 얼마나 갈지 두고 보자는 듯 했다.

 

 

 

 

물과 하늘을 붉게 물들이다 고개를 저너머로 내민 태양, 누구는 배 위에서 누구는 가트에서, 그리고 누구는 아직도 꿈 속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부터 사람들은 보트를 타고 나와 갠지스 강 위에서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했다.


 

 

바라나시엔 갠지스 강이 있고 갠지스 강에는 보트왈라들이 있다. 보트를 타면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는데 인도는 신분제 때문인지 그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도 보트를 몰았다고 했다. 카스트 제도의 여파다. 물론 최근에 들어서 신흥 계층으로 경제적 부를 차지한 사람들이 등장했지만 신분의 제약을 뛰어넘기는 어려운 편. 예전에 한 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신분의 제약을 뛰어넘지 못한 두 연인은 물 속에 뛰어들어 다음 생애에서 사랑을 꿈꿨고 그 손을 아련하게 잡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만큼 신분이란 것은 조금 버겁다. 무겁다.


 

 

힌두교의 성지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곳 바라나시를 찾아온다. 길게 늘여진 줄에 서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은 갠지스 강물 속에서 다시 태어날 자신을 꿈꾸기 때문일까? 저 장면은 빈디 혹은 쿰쿰으로 불리는 이마 위의 점을 찍기 위해 준비하는 장면이다. 선연한 붉은 색의 점을 이마에 찍히곤 신의 은총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처럼 아이 같은 표정을 짓던 인도사람들.








 

 

저녁에 배를 타고 나간 적이 있다. 어둠이 아직 깔리기 전, 내 발 밑은 분간이 될 때 배에 올라타 흐르는 강물을 느끼다보면 낮이 찾아오듯 밤도 그렇게 찾아온다. 이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옆 사람, 심지어 보트왈라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가트에서는 뿌자 의식의 소란스러움이 아득하게 들려오고 검은 강물에는 간간이 꽃이 하나씩 떠내려온다.




 

 

바라나시에 있는 사람들은 강물 위에 있는 사람도, 가트 위에 있는 사람도 여유롭다. 대부분 생각에 잠겨 있다. 그리고 그 깊은 생각을 방해하는 사람은 없다. 사념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서 대낮, 옆에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짜이를 한 잔 곁들어 햇빛을 즐기는 것이 바라나시에서의 오후 일과라면 일과다. 누군가는 기타로 이별을 노래하고 누군가는 다음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분주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내게 오지 않은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그 곳, 갠지스 강가에 늘어선 가트의 일상이다.




 

 

바라나시를 방문했을 즈음, 연날리기 축제가 열렸다. 인도 전역에서 열리는 것이라고 하는데 아이, 어른할 것없이 허구한 날 하늘에 연만 수놓고 있었다. 괜히 흥이 나 골목길에서 연과 실패를 사와 낑낑거리며 연결하고 있으려니까 연을 바라보던 아이가 하나 다가온다. “얼마주고 샀어?” “20루피쯤?” “덤탱이 썼네 ㅎㅎ”

조그마한 것이 여간 귀찮은게 아닌데 덤탱이를 썼다는 말까지 들으니 조금 울컥한다. 내 눈치를 살피던 아이는 급히 덧붙인다. “그래도 날렵한 것을 잘 골랐는데?”

아이의 도움인지 집착인지 연을 하늘에  띄우곤 다른 연들과 뒤섞여 춤을 추게끔 하니 이게 쉬운 것도 아니고 한국 연과는 묘하게 운전법이 달라 땅에 곤두박질치기 일수다. 그럼 떨어진 것을 다시 하늘로 띄워주고 어떻게 날리는지 설명해주니 아이와 나는 금새 친구가 되었다. 20루피(400원)로 하루동안 흥을 봤으니 이정도면 남은 장사다 싶어 아이에게 선물로 주니 아이의 입은 이미 조커의 입마냥 귀까지 찢어져있다. 그녀석, 잘 살고 있으려나?




 


 

 

연과 연의 춤사위가 지나쳐 지상으로부터의 연결을 잃고 낙하하는 연은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다. 땅으로 떨어지는 연을 보곤 어른과 아이할 것 없이 달려들어 잡는다. 물론 아이를 밀치며 연을 낚아채는 철없는 어른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물 위로 떨어지는 연은 보트를 타고 다니는 전문 수집 꼬마들의 몫이다. 그 연을 다시 판매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가지려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지만 배에 한 가득 실려있는 연은 혼자서 날리기에 제법 많다.








 

지금 다시 세어보니 바라나시에서 8일을 머물렀다. 바라나시에서 8일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다. 특히 쿠미코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짧게 왔다가는 쪽에 속한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나시를 찾고 바라나시야 말로 진정한 인도라고 말한다. 바라나시에 오지 않은 사람은 인도를 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소위 바라나시 부심에 나는 여행 초창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심지어 바라나시에서 8일을 보내고 떠난 뒤에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여행지의 밤, 혹은 동행과 헤어져 혼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나를 품어주었던 바라나시에 대한 그리움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