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인도] #4. 골목에서 만나다, 바라나시

2013. 1. 7. ~ 2013. 3. 1.

#4. 골목에서 만나다(2013. 1. 9. ~ 2013. 1. 16.)

바라나시, 인도

골목은 사람을 닮아있다. 아니 어쩌면 골목이 사람을 닮은게 아니라 사람이 그 골목을 닮은 것일지도 모른다. 거미줄처럼 꼬여있는 큰 길 저 너머의 세상 속에서는 진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때문에 어디를 여행하든 골목길을 걷는 편이다. 음악을 들으며 걸어도 좋고 상념에 젖은 채 걸어도 좋다. 골목은 그런 곳이다. 아직까지 강도를 만나지 않았지만 외진 곳에서는 조금 콩닥콩닥 두려운 마음도 싹튼다. 다만 그 두려운 마음은 또 다른 공간의 만남이라는 설렘으로 탈바꿈하기에 이른다.


​인도, 그 중에서도 바라나시는 꼬불꼬불 골목길이 인상적인 편에 속한다. 남인도는 골목이 별로 없고 북인도에 형성되어 있는데 조드뿌르나 우다이뿌르, 분디 정도의 골목길이 적당히 인적도 있으면서도 한산한 느낌을 주곤 했다. 골목은 어디나 다 그렇겠지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저기 정신없는 광고들의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있는 가운데 익숙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외부인을 호기심있게 쳐다보는 아이들도 있다.


​골목에는 상점이 있다. 쿠미코 게스트하우스에서 가트와 반대쪽 골목으로 나오다보면 조그마한 구멍가게가 있는데 쿠미코에 사는 사람들이 대충 점심을 떼우러 과자를 사러 가는 곳이기도 했다. 다른 곳보다 저렴하다는 이유였는데 그곳에서 물을 사고 과자를 사는 과정 속에서 단골이 되기도 했다. 심드렁하게 걷고 있는 나에게 오늘은 물을 사지 않냐며 먼저 말을 물어오기도 했으니 말이다. 인도에도 중형급 마트와 대형 마트가 있긴 하다. 신기했던 건 마트에 들어가는데 내 개인 소지품은 무조건(반드시) 사물함에 맡겨야만 했다. 그리고 경찰인지 경비원인지가 지키고 서있었다. 테러에 대한 대비책일까 아니면 도난에 대한 대비책일까? 대형 마트가 확실히 물건값은 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멍 가게를 서성이는 것은 인사 한 마디가 돈 몇 푼보다 소중했기 때문이리다.


구멍가게에서 사진에 보이는 긴 골목을 따라가다보면 메인 로드와 시장이 나오고 그 반대쪽으로 가면 시원라씨와 블루라씨를 비롯한 라씨집과 라가카페와 같은 집들이 여기저기 모여있다. 시장에서는 에그롤을 파는 바쁜 손놀림을 구경할 수 있는데 이게 가격에 비해 양과 맛이 썩 괜찮아. 가끔 먹으러 가곤 했다. 디우의 야시장보다는 위생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도 찾지 않는 위생, 인도에서 찾을리 만무했다.


큰 길과 연결된 골목에는 관광객들이 많다. 그리고 그 관광객들을 붙잡고 하나라도 팔아보려는 장사꾼들이 있다. 비좁은 골목엔 사람도 다니고 자전거도 다니고 오토바이도 다니고 소, 개와 같은 동물도 다닌다. 따라서 사람의 움직임이 많은 시간대에는 자주 멈춰있어야 하기도 했다. 바라나시에 도착한 지 며칠 안되었을 때 도시 전체에 정전이 들었다. 깜짝 놀란 나에게 음식집 종업원은 바라나시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했다. 늦은 저녁 정전으로 불이 모두 꺼진 골목에 촛불이 가득 메운다. 핸드폰 플래쉬를 비추며 발 밑 즌 데를 피하려는 사람들과 발 아래를 보지도 않고 걷는 사람들. 이게 바로 주민과 스쳐지나가는 관광객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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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는 많은 기다림이 있다. 모나리자 카페 앞에서 만나기로 한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엄마보다 일찌감치 구멍가게 앞에 서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기다림도 있다. 요즘 사람들은 잘 기다리지 않는다. 빠른 것을 추구하다보면 더 빠른 것을 원하게 되고 사람 사이의 관계도 빠르길 원한다. 혹자는 이를 소통의 원할함이라고 포장하려들지만 진중함이 부족하다는 말로 대신해보련다. 옆에 앉은 사람의 마음을 금새 알 수는 없다. 자꾸 두드리고 부딪혀야 비로소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일터이다.


메인 로드에서 만난 아이는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다. 골목이라는 공간은 다소 비좁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간격이 가깝다. 그래서 그 사람의 표정을 더 쉽게 살필 수 있다. 차가 다니는 큰 길에 나가면 차가 만드는 굉음과 차가 만드는 간격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 하지만 골목은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보다 더 인간적인 거리라고 말한다.


​바라나시는 성지이기 때문에 뭔가 제대로 된 육식과 주류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오랫동안 머물다보면 오리지날 단백질의 섭취에 대한 갈망이 커져가는데 주류는 그렇다치더라도 고기를 공수해오기가 쉽지 않다. 쿠미코에 있던 나이 많은 ‘형님’은 이슬람 거리에 가면 살 수 있다고 했다. 그 분이 떠나고 홀로 이슬람 거리로 떠난 적이 있다. 거리에 히잡과 이슬람식 작은 모자를 쓴 사람이 늘어나다보니 맞게 온 거 같긴 하다. 닭이 여기저기에 널려있고 심지어 배달이 되는 ‘한국어로 된 간판’이 있는 치킨집도 발견했지만 데굴데굴 굴리던 눈을 가다듬어보니 어떤 아이가 우물질을 하고 있다. 뒤에는 동생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뒹굴고 있고 어른은 없다. 마음먹고 떠나온 이슬람 거리에서 착잡한 마음만 안고 돌아갔다.




바라나시에서 나는 거의 7시에 일어나 해를 보곤 남들보다 먼저 샤워를 마쳤다. 올드 쿠미코의 1층 샤워실은 전기 온수기가 있지만 얼른 씻지 않으면 물이 다시 따뜻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곤 했다. 물기를 닦고 나갈 채비를 하다 늦어질 때면 1층에서 샨티 할아버지의 알람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아사고황~ Breakfirst! 밥머겅~” 뉴쿠미코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방값에 준하는 아침식사를 즐긴다. 매일 매일 메뉴가 달라지는데 가끔은 라면도 나온다. 보통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레시피의 파스타와 샐러드, 차이. 괜찮은 아침이다.
 아는 사람들과 서로의 생존을 기념하며 아침을 챙겨먹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골목을 거닌다. 다름이 아니라 시원라씨에서 라씨를 한 잔 하기 위해서다. 모퉁이 쪽에 있는 시원라씨가 저 멀리 점점 보일 때쯤이면 오픈을 하고 정리하던 길들이 나를 먼저 알아보곤 손을 흔든다. 원래 정이 많은 것인지 1일 기본 2라씨를 먹는 고객에 대한 CS서비스인지 그 환한 맞이가 좋았기도 하고 블루 라씨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불매운동이 한참 있던 터라 자연스럽게 시원라씨에서 저 걸쭉한 라씨를 즐긴다.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앉아 라씨를 즐기다보면 가게 바로 앞으로 운구행렬이 지나간다. 삶을 관찰하기에 라씨 한 잔은 썩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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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트에 가까이 갈 수록 거리에는 걸인들이 많았고 강물에 띄울 꽃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를 안고 있는 빼빼 마른 아낙을 지켜본 적이 있다. 씻지 않아서인지 시커멓게 붕 뜬 모습의 그녀는 구걸을 통해 받은 돈을 모아 자신의 끼니를 챙겼다. 아이는 이유를 하지 않아 아낙의 젖을 먹어야 했기에 자신의 배고픔을 채우기보다는 아이의 또 다른 식사를 위해 먹는 느낌이 역력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도 있다. 돈이 많은 사립학교는 커다란 스쿨버스가 아이들을 실어나르지만 어떤 학교는 릭샤에 리어카를 연결해 등, 하교용 셔틀을 운영하기도 했다. 작은 아이들이 조금 위험해보이는 차 위에 앉아 장난을 치며 보여준 천진난만함과 웃음. 그래도 저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있는 가정의 아이들이다. 그만큼 인도의 빈부 격차는 상상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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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를 떠나던 날 쿠미코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골목에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행을 갔다 돌아온 집에서 다시 떠나는 느낌, 너무나도 익숙해졌기에 어느 사이엔가 나도 이 골목의 일원이 된 것 같았지만 골목에게 나는 영원한 이방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