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7. ~ 2013. 3. 1.
#6. 타지마할 앞에 앉아(2013. 1. 17.)
아그라, 인도

바라나시에서 5시가 지나 어렵사리 탄 기차는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 나를 아그라에 내려놓았다. 내가 제대로 타고 가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외국인 쿼터에 알맞은 표를 끊어서인지 한국 사람도 간혹 보였고 외국 사람도 보였다. 아그라에서는 당일치기가 목표였기 때문에 숨도 돌릴 틈이 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기차역에서 또 다른 기차를 기다리는 저 아이를 보곤 셔터를 눌렀다. 소사진전에 “시들기 전에”라는 제목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사진의 탄생 비화인 셈이다. 아그라 포트 역에서 타지마할까지는 거리가 제법 있었다. 이제 인도에 제법 있었기 때문에 내 딴에는 능숙하게 릭샤왈라와 투닥거림을 해결하고 릭샤에 몸을 실었다. 타지마할에 가는 동안 자신의 관광상품을 소개하는 릭샤왈라의 이야기는 한 귀로 흘려보내며 바라본 아직 해가 채 뜨지 않은 아그라의 풍경은 삭막했다. 타지마할을 위한 도시랄까, 그 저주 때문인지 지형 때문인지 물에 석회가 너무 많이 섞여나와 지하수를 식수로 쓰지 못하고 씻는 물 또한 미끈미끈거린다고 했다. 파테뿌르 시크리에 관심이 있었던 터였지만 델리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의 고추장과 자이살메르에서 만나기로 한 누나가 아른거려 당일치기로 왔다가기로 했다.

제법 멀리 떨어진 쪽에서 내려 입장소를 찾아 걸어가던 길

아그라에 둥지를 튼 관광객들은 단촐한 차림으로 타지마할로 향했다. 계속 쭉 가다 오른쪽으로 꺾으니 매표소가 나왔는데 왼쪽으로 가야 있는 짐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오라고 했다. 짐 보관소는 조금 못 미더워보였지만 쭉 찢어주는 짐 보관증을 손에 꼭 쥐고 다시 매표소로 향했다. 750루피, 인도에서 간 유적지 중에 가장 비쌌지만 생수도 주고 점심을 먹고 다시 들어와도 된다고 했다. 일종의 종일권인 셈!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아침 햇살에 타지마할의 하얀 대리석도 조금씩 색을 바꿔갔다.


혼자 있던 나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접근한 인도인. 타지마할에는 삼각대를 들고 올 수 없기 때문에 선뜻 카메라를 건넸는데 대충 찍더니 돈을 내놓으란다.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조금 긁어모아 주니 그냥 별 말 없이 떠난다. 그래도 그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이 곳에서 내 사진이 하나도 안 남을뻔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다행이랄까.

타지마할이 훤히 보이는 자리에 앉아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느끼며 타지마할을 바라보았다. 아, 이게 내가 읽던 책에서나 보던 그 건물이구나. 기차를 타고 오며 론리에서 봤던 타지마할의 탄생 비화도 떠올려보고 그냥 가만히 앉아 타지마할만 보는데도 시간이 매우 잘 갔다. 이 날은 사진은 조금만 찍고 내 눈에 많이 담아가려고 쉴 새 없이 바라본 것 같다. 짝사랑을 하는 느낌으로 계속 올려다보았다.



론리플래닛 예전 버전인가 최신 버전에 표지와 비슷하게 연출해보았다.

점심을 먹고 나선 타지마할에 더 다가갔다. 대리석도 만져보고 안에도 구경하고 다시 내가 원래 앉아있던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타지마할을 구경했다. 내가 무슨 수련을 하는 걸로 생각한 여행객들이 나에게 말을 걸기도 했고 같이 앉아 함께 타지마할을 보기도 했다. 그래서 질릴 정도로 타지마할을 봤는데 사진에 관해서는 조금 아쉽기도 하다. 조금 더 다른 각도에서 타지마할을 담았으면 어땠을 지, 강 건너편에서 타지마할을 찍었다면 어떤 사진이 나왔을지 궁금했고 타지마할의 일몰도 궁금했다. 그래도 난 지금 이 순간은 사진의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타지마할을 느끼고 싶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처럼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줄곧 바뀌었고 슬슬 이만하면 되었다라는 생각이 들 때, 나는 걸어서 아그라의 골목골목을 누벼보기로 했다. 아그라에서 분디로 가는 기차표는 이미 끊어둔 뒤였고 그 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근처의 시장과 공사 현장, 아이들이 노는 곳과 어른들이 쉬는 곳을 둘러보았다. 아그라 역 근처에는 제법 큰 시장이 열려 많은 인파가 오가고 있었다. 땅콩을 한 봉지 사서 거리를 걸으며 땅콩을 까먹었다. 가방도 이고 카메라도 들고 있지만 지금만큼은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후일담으로 분디에 가는 기차가 계속해서 오지 않아 걱정이 되었기도 하고 아그라 포트 정션의 승차장 구분이 모호했기 때문에 이리갔다 저리갔다 했지만 또다시 교훈을 얻었다. 인도 기차는 늦었으면 늦었지 일찍 오진 않는다고. 기차표에 적혀있는 시간과 판이하게 다른 시간에 내 이름이 포함된 승객목록이 게시되었고 내가 기다리던 기차는 승차장에 도착했다. 13시간동안 머물러서 남들은 다 가는 아그라 포트도 가지 않았지만 타지마할 그 자체만으로 충만한 13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