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7. ~ 2013. 3. 1.
#7. 리틀 블루시티, 분디(2013. 1. 18. ~ 1. 21.)
분디, 인도
나를 실은 기차는 밤새도록 달렸고 나는 바라나시에서 일주일 넘게 함께 생활한 사람들을 그리워하느라 잠에 들지 못했다. 바깥의 풍경이 완만해지고 점점 새벽빛이 드러내고 있을 때 나는 얼마 남지 않은 핸드폰의 지도를 통해 내가 라자스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제 분디를 지나칠지 몰라 긴장하며 핸드폰을 붙들고 있는데 지도 상의 분디는 정말 가까워보이는데 기차는 요리조리 분디를 피해서 가는 것처럼 보였다. 내 걱정에 코웃음이라도 치듯 열차는 분디에 들어섰고 이른 아침임에도 많은 인파가 분디에서 기차에 탑승했다. 텅빈 기차역에는 나와 짜이를 파는 아저씨 밖에 없었는데 별 생각없이 습관처럼 시킨 짜이는 나중의 유랑을 통틀어서 기억에 꼽히는 쪽에 속했다.

사람들이 인도에 오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조드뿌르(조드푸르)와 김종욱찾기, 조드뿌르에서의 인연을 기대하고 오는 사람들은 메헤랑가르 성에서 내려다본 파란 마을을 떠올리며 온다. 하지만 조드뿌르만 블루시티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붐비는 조드뿌르보다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이 곳에서는 밖을 나가기만 하면 연예인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아무튼, 역에서 나오기 전에 역 창구에서 분디에서 델리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분디에서 며칠만 있다가 델리로 입국하는 친구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역 밖으로 나왔는데 허허벌판에 릭샤 한 대도 없어 방황하게 된다. 릭샤가 거의 몇 대 없는 동네가 바로 분디다. 다행히도 시가지로 걷다보니 저 멀리서 릭샤가 나를 향해 오고 있어서 얼른 올라탔다. 집집 마다 우유인지 뭔가를 배달하는 일도 같이 하시던 아저씨는 오토가르와 시가지, 시장을 지나 여행자거리에 있는 어떤 식당 앞에 나를 내려놓았다.

음식점에서 터키에서 만났던 누나와 그 일행을 만났다. 이 누나는 블랙홀 같은게 어딜 가든 이렇게 무리를 만들어 재미있게 여행하는 것 같았다. 남자 세 분은 각각 자신만의 길을 걷던 사람들로 나이대가 엇비슷해서인지 의기투합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식사를 간단하게 때우던 찰나에 누나가 자기가 쓰던 방을 넘겨준다고 했다. 나야 완전 땡큐지~ 식사를 마치고 누나는 체크아웃을 하러, 나는 체크인을 하러 게스트하우스에 갔다. 사장님은 지난 밤 네 명의 한국인과 함께한 술자리의 여파 때문인지 조금 비실비실한 것처럼 보였다. 방은 하루에 250루피, 우리나라 돈으로 5000원 정도였는데 화장실도 딸려있고 침대도 엄청 넓고 방도 엄청 넓은데 나만 갈 수 있는 루프탑까지 있었다. 바라나시 쿠미코 게스트하우스에선 침대도 모잘라 방바닥에서 침낭을 깔고 살았는데 이곳은 정녕 천국일지도 몰라.
방을 둘러보는 나를 사장님은 가련하게 쳐다보더니 한 마디 했다. “원숭이가 들어올 수도 있으니 문 잘 잠그고 자~”

짐을 챙긴 누나는 바람과 같이 자이뿌르로 사라졌고 자이살메르에서 사막 파티원을 모집하고 있으니 시간이 되면 와서 합류하라고 했다. 나는 친구와의 약속도 있기 때문에 나중에 연락한다고 했다. 집을 내려놓고 둘러본 분디는 말 그대로 블루시티였다. 어쩌면 조드뿌르보다 더 조용하면서도 더 선명한 블루시티라는 생각이 든다. 누나를 배웅하려던 찰나 누나는 또다른 일행인 한국인 여자가 아직 분디에 있다며 그 분의 인상착의에 대해 설명해줬다.

개느님도 느긋하게 분디의 낮을 맞이하고 있다. 분디도 조드뿌르와 기타 인도의 도시와 비슷하게 골목이 구비구비 나있는게 참 예쁘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한테 분디 지도와 분디에서 볼만한 것에 대해 소개를 받고 카메라를 챙겨 바깥으로 나왔다.

게스트하우스 인근에는 다른 게스트하우스와 식당이 제법 있는 편이고 건너편에는 구멍가게가 있어 물을 사거나 간식거리를 사기에 용이했다. 왼쪽으로 꺾어 나오면 분디성으로 올라가는 길과 밑으로 내려가는 길 양 옆으로 옷 가게며 여행사며 음식집이며 이것저것이 산재하고 있었고 여기가 통칭 메인로드라고 불리는 것 같았다.

게스트하우스의 방에 딸려있는 옥상에서 본 게스트하우스 근방 거리의 모습, 무척이나 한산하다.


게스트하우스 주변을 탐색하다보니 인공호수인 나왈 사가르와 아리아 물의 신인 바루나의 사원이 나오고 뒷산이 하나 나왔는데 저기 멀리 산 꼭대기에 있는 건축물을 보곤 오늘은 저기에 갔다와서 저녁을 먹고 쉬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가 야간에 분디 성을 바라볼 만한 뷰포인트인거 같았는데 구시가의 메인로드에서 바라보는 성의 모습 또한 이뻤다.




분명 이 언덕만 올라가면 건축물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길처럼 보이던 것은 실제 길이 아니었다. 내가 길을 개척하며 언덕을 오르다가 그래도 분디에서의 여행 첫 날인데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촬영했다.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진 말고도 점프샷도 찍고 난리를 피웠는데 경사 때문에 착지를 잘못해 객사할 뻔 했다. 쿠미코 게스트하우스에서 접지른 발목이 괜히 시큰거려 얼른 마을 속으로 들어갔다.

분디에 있는 거의 모든 골목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눈 인사를 하고 또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는데 분디는 뭔가 특별한 관광지가 있다기 보단 이렇게 순수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더 좋았다.

당시 아직 많은 도시를 가보지 못해 델리나 바라나시, 아그라에서 만난 아이들과 비교를 해보자면 참 순했다. 어떤 아이들은 지금까지 만난 아이들처럼 펜을 하나만 줄 수 없냐고 물어왔고 내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니 엄청 서운한 표정을 지어 내가 다 미안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쉬다가 저녁을 먹다보니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행진하기에 무슨 시위라도 난 줄 알았는데 표정은 즐겁고 온순한 것처럼 보였다. 길에 서서 구경하던 다른 인도 사람에게 물어보니 “It’s festival!”이라고만 했다. 나중에 분디에서 친해진 인도 사람한테 물어보니 누구의 결혼식 때문이라는 말도 하고 축제라는 말도 하기에 나는 그냥 축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행렬을 보는 도중에 하루 종일 만나지 못했던 한국 사람이 가만히 서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내가 들은 인상착의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았는데 말을 걸었더니 역시나 딴 사람이었다. 나중에 다시 만날 자리가 있어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 때는 정말 당황스럽다고 했다.
다음 날, 분디에 왔으면 분디 성에 가야한다며 삼각대와 카메라를 챙겨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성 입장료가 150루피, 아침에 게스트하우스에서 간단하게 먹은 아침의 세 배였다. 삼각대는 주저한 감도 없지 않은데 론리에 보니 원숭이들이 워낙 많이 나와 그들을 쫓아낼 수 있는 것을 가져가라길래 냉큼 가져왔다. 원숭이는 정말 많았고 나는 론리를 맹신하기 시작했다. 분디라는 동네를 추천한 것은 터키에서 만났던 형님이셨는데 론리는 이러한 분디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었다.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동네”

아직 연무가 걷히질 않아 시원하게 보이질 않는 분디의 전경



여기저기에서 만나게 된 원숭이들. 얼굴이 까만 녀석들은 내가 시비를 걸지 않는 이상 나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오전 내내 성을 돌아다녔는데 사진이라곤 이것 밖에 남지 않았다. 성은 길기도 하고 내부에 이런저런 건물들이 폐허처럼 방치되어 있다. 성의 내부에는 커다란 우물이 있었는데 물이 말라 우물처럼 보이진 않았다. 바오리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분디에서 몇 곳 찾아볼 수 있었다.

성을 오르며 든 생각이, 나는 풍경을 찍고 싶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똑딱이를 들었는데 풍경이라는 것에 조금 무뎌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보다 남들의 이야기를 듣는 솔직한 기회에 더 끌린다. 그래서 골목을 누비고 그 골목에서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마 이런 느낌은 터키에서 마르딘을 방문한 이후로 계속 드는 것 같았다. 한국에 묶여있는 지금도 가끔 여유가 있을 때면 카메라를 대충 들처메고 골목을 들쑤시며 다니곤 한다.

오후에는 제법 멀리 떨어진 호수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 골목에는 역시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분디 같은 경우 아직 관광지라는 느낌이 나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의 반응도 온순했다. 돌도 많이 부딪히면 매끄러워지듯 관광객이 많이 가는 도시의 사람들은 본연의 성질을 잃고 변한다. 다른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도 그러하듯이.



메인로드를 따라가다보면 제법 큰 규모의 시장이 있다. 이쪽 시장이 중심지에 다소 근접해 숙소를 이쪽에 잡을까 생각했었는데 여기저기 숙소를 찾아다녔다는 누나의 말을 빌어보자면 쏘쏘, 차라리 구시가쪽에 숙소를 잡는 것이 낫다고 한다.

구 시가의 메인로드, 식사를 해결할 수도 있고 간식도 먹을 수 있는 이쪽 동네에서는 제법 번화가이다.

혼자 여행하던 대만 여행객과 서로 자국민이라고 오해를 하여 어쩌다보니 친해졌는데 저녁을 같이 먹고 차를 한 잔 한 다음에 야경을 같이 보러갔다. 맛살라가 들어가 조금 독특한 향의 짜이를 마셨는데 짜이를 끓여대던 아저씨는 나에게 윙크를 날리며 한 번 잘 해보라고 했다. 뭘요 아저씨…

나왈 사가르와 야경, 메인로드에서 올려다보는 야경도 일품이었다. 바라나시에서는 수많은 인파에 압도되었고 아그라에서는 타지마할의 완벽한 균형미에 압도되었다면 여기 분디에서는 사람들 속에서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루는 메인로드 반대편에 있는 유적지 군을 보러 갔다. 기둥이 엄청 많은 건축물과 바오리들이 산재해있는데 지도만 보고 걷다가 정말 힘들었다. 왠만하면 릭샤를 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 그래도 골목을 누비며 걷다보니 결혼식 행렬도 만났고 아이들도 만났고 새집으로 이사와 파티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과 악단도 만날 수 있었다.

시장의 끝쪽에는 광장이 있고 광장에는 노점상에서 저렴한 먹을거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음료는 왠지 몸에 안 맞을 것 같고 길거리에서 즉석 햄버거를 사먹었는데 제법 맛있었다.

오토바이 위에서 한껏 멋을 내고 있는 청년

외부인을 쳐다보는 아이의 눈빛. 신비함과 더불어 약간의 경계도 하고 있다. 아이에게 다가가니 아이는 집으로 달아났다. 이쪽 골목은 조금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것 같았는데 아이들은 맨발로 밖을 돌아다니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바지만 훌렁 내리고 여기저기를 화장실로 만들었다. 그리고 씻지도 않고 바지를 그대로 올리고는 배시시 웃기도 했다.


아이들 사진을 찍다보니 하이앵글이 머리를 크게 만들고 몸을 작게 만들어 귀여운 느낌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았다.


염소와 어떻게든 같이 사진을 찍고 싶었던 아이.

아직 밖에서 나가 놀 정도로 크지 않은 아이들은 집뜰에서 골목을 지나가는 외국인을 신비한 눈빛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첫날, 내가 아는 사람으로 오해했던 한국인 누나와 인도 친구들. 이 누나도 혼자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는 친구가 괜찮은 동네가 있으니 한 번 가보겠냐는 말에 냉큼 따라왔다고 했다. 그래서 너무 무방비하게 따라온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럴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선해보여서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저기 인도인 친구는 다람살라에서 여행과 관련된 일을 하는 친구이고 이 옷가게는 분디에 사는 또 다른 친구의 집. 누나도 여행하면서 한국인을 좀처럼 만나지 못했다고 하니 나름 조용히 여행을 다니신 모양이다.

인도 아가들은 어찌나 눈망울이 선하고 이쁘던지…

분디에서의 마지막 아침, 원래 친구가 이 날 비행기를 타고 출국한다고 해서 다음날까지 델리에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잠을 자던 중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오더니 몸이 안 좋아 여행 자체를 포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친구가 가져다 주기로 했던 고추장은 둘째치고 여행 자체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새벽에 잠에 들지 못하고 여행 계획에 대해 생각해봤다. 델리는 이미 간 곳이라 다시 가기에 조금 버겁고, 일단 체류비가 비쌌다. 어차피 델리에서 자이살메르로 가려고 했으니 이쪽에서 자이살메르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론리를 열심히 찾아보니 이 곳에서 버스를 타고 자이뿌르(자이푸르)에 가면 자이뿌르에서 기차가 있다고 했다. 원래 자이뿌르는 대도시의 느낌이 강해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한붓그리기를 선호하는 나에게 거쳐가는 중간 지점으로 적절할 것처럼 보였다.

마음에 들었던 분디를 급작스럽게 떠나는 나의 마음은 그렇게 편하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예전에 묵었던 한국 사람만큼 내가 술을 많이 먹지 않아서 실망한 눈치이긴 했지만 유일한 손님이었던 내가 떠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여행에서의 무운을 빌어주었다. 누나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은 카톡 뿐이었는데 누나가 깊이 잠에 들어있는지 카톡을 읽지 않아 인사를 하지 못하고 짐을 꾸려 버스정류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떠나던 찰나 옷가게를 하던 인도 친구가 문을 열고 있어 나의 떠남을 알렸더니 진짜 자신의 친구가 떠나가는 것마냥 안타까워하며 나에게 스카프를 하나 선물해주었다. 나는 이 스카프가 행운의 상징이라 생각하여 여행하는 내내 두르고 다니고자 마음을 먹었다.
자이뿌르로 떠나는 공용버스는 가끔 있는 편이었다. 표를 끊고 영어는 아예 써있지 않은 버스 사이에서 내가 탈 버스를 찾고 있자니 짜이를 함께 마셨던 대만 친구를 만났다. 그녀도 오늘 분디를 떠난다며. 우리는 연락처도 나누지 않고 헤어졌고 그녀보다 내가 먼저 분디를 떠났다. 인체공학적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로컬버스에 짐을 구겨넣고 창가 너머로 스러지는 분디를 바라보았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내 마음 속에 잔잔한 여운을 남겨준 그 곳, 터키에서는 마르딘이었다면 여기 인도에서는 아마 분디가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