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7. ~ 2013. 3. 1.
#11. 파란 골목에서 너를 기다리다 (2013. 1. 26. ~ 1. 28.)
조드뿌르, 인도
조드뿌르에 많은 사람들이 온다. 인도가 유명해진 이유이기도 하거니와 사람들은 자신만의 김종욱과 임수정을 찾아 이곳, 조드뿌르로 온다.
얼마나 달렸을까, 잠이 덜 깬 내가 두 다리를 딛고 선 곳은 조드뿌르, 수많은 남녀가 김종욱과 임수정을 찾아 유령처럼 모여들었다가 와이파이만 찾다 떠난다는 그 곳이다. 릭샤꾼과 협상을 해서 누나랑 메헤랑가르 입구까지 데려다달라고 했다. 첫 번째 릭샤꾼은 그 가격으로는 절대 안 간다며 손사레를 치더니 다른 릭샤꾼과 협상해서 올라타니 표정이 영 좋지 않다. 여행을 하며 릭샤꾼과 부딪히다보니 적정가라는 개념이 머리 속에 들어왔고 보통 릭샤꾼은 두 배의 가격부터 부르곤 했다. 아직 적막한 조드뿌르는 컴컴하니 어둠 속에 들어차있고 릭샤꾼은 제법 먼 거리에 자신이 적은 돈만 받아야 된 사실이 내내 못마땅한 모양이다.
“아뇨, 아저씨! 그건 당신들이 정해놓은 외국인 전용 가격이잖아요. 더는 못 드려요.”
릭샤꾼은 우리를 힐뷰 근처에 내려놓았는데 밤이라 도통 표지판이라든가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길을 정 못찾으면 전화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전화를 드려보니 잠에서 갓 깬 목소리로 오는 방향을 설명해주셨다. 한참을 헤매다보니 아저씨가 게스트하우스 앞쪽에 나와계시다가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밤이랑 낮의 길은 보이는게 참 다르다. 게스트하우스에는 방이 총 3개가 있었는데 아직 체크아웃을 하지 않아 한 방 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누나랑 방을 같이 쓰고 있다가 체크아웃하면 그 때 들어가기로 했다.
오랜만의 샤워, 짐을 정리하고 쉬다보니 카메라 센서에 사막 먼지가 들어가서 그것을 빼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옷가지도 빨래해서 널어놓고 느긋하게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을 즐겼다. 게스트하우스의 분위기는 여타 다른 곳과는 다르게 가족적인 분위기가 넘쳐흘렀는데 사장님은 자신의 게스트하우스 요리에 한국 음식을 추가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넌지시 어떤 음식이 있는지 누나가 가르쳐주는 사이에 나는 생각하지 못했던 이 곳, 조드뿌르에서의 일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조드뿌르에서 누구든 한 끼를 해결해봤을 법한 오믈렛 가게, 오믈렛 가게에는 신문이 스크랩되어 있는데 그 속의 아저씨는 생각보다 젊었다. 플룻 비어(fruit beer)는 이름과는 다르게 알코올이 0이라 조금 아쉽긴 했다. 여기에 오믈렛을 추가해서 먹는다면 한 끼 식사는 거뜬하다. 아저씨랑 누나랑 달걀이랑 같이 찍은 사진이 있긴 한데 블로그에 올리기는 조금 그렇다. 나이가 많은 아저씨는 유머감각도 있고 연신 오믈렛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선샤인 게스트하우스가 메헤랑가르 근처 높은 곳에 위치하다보니 조드뿌르의 골목이 내려다보인다. 어딜 쏘다니고 싶지 않을 때면 루프탑에서 햇볕을 즐기며 가만히 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조드뿌르에 온 한국 사람들은 여기저기 쏘다니라 바쁘다.
광장 쪽에서 바라본 시계탑과 메헤랑가르 성
태양이 지고 느즈막한 분위기의 골목엔 오늘 하루를 정리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밑에 있는 스카프 가게가 김종욱 찾기에 나왔던 곳이던가? 괜스레 살 생각도 아니면서 기웃거리기도 했다.

이 날은 같은 숙소에 묵던 한국 분들과 사장님을 위해 한글로 이정표를 쓴 날! 안 그래도 사장님한테 메헤랑가르 올라가는 주변에 방향을 나타내면 사람들이 쉽게 찾아오지 않겠냐고 물어봤었더랬다. 나는 명함 같은 곳에 약도를 그리면 될 것 같았는데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좋은 방법! 힐뷰 근처에는 마땅히 공간도 없고 다른 여행자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그곳 사람들이 근처에 이정표 세우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2013년 1월 27일에 그린 저 이정표가 아직도 사람들을 잘 인도해주고 있나 궁금하긴 하다.
게스트하우스 뒷 산? 이 아니라 뒷 성! 메헤랑가르가 떡하니 버티고 있기에 평소에 잘 챙기지 않는 유적지였지만 오디오 가이드까지 챙겨가면서 성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사띠, 우리나라로 치면 껴묻기, 순장, 열녀비와 비슷한 것인데 왕이 죽어 화장할 때 부인이 장작불 속으로 들어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80일의 세계일주에서보면 인도를 여행할 때 남편이 죽었다고 화장 당할 뻔한 여인을 주인공이 구하는데 아마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한다.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성 내부에는 많은 사람들고 섬세한 유적이 있었다.

창문은 예전부터 단절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었다. 창 너머의 사람과는 소통을 할 수 없다. 창 너머의 사람들을 지켜보는 인도인과 그 사람을 창 너머에서 지켜보는 나.
내부에는 많은 계단이 있어 높은 층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층계 간 이동이 필수적이다. 계단이 둥글게 올라가는 모습과 인도인의 멋쩍은 표정에서 동세를 느껴볼 수가 있다.
성 내부에는 터번을 감는 방법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고 물담배를 피는 아저씨도 있었다.
밝게 웃던 모자, 인도 내에서도 관광은 여유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일지도 모른다. 옛날 여행의 자유가 없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삶을 마감했다. 어디론가 이동한다는 것은 정착민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신석기 시대의 농업혁명 이후로 정착은 곧 생존이라는 본능을 구축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갠지스 강의 뱃사공과 도비왈라, 짜이집의 주인은 여행을 원하지만 자신의 터전을 떠날 수가 없었다.
메헤랑가르에서 내려다본 조드뿌르, 선연한 색이 인상적이다.
메헤랑가르를 이만큼 돌았으면 본전 이상을 뽑았다 싶을 때쯤 배가 고파왔다. 사실 조드뿌르에 온 목적은 임수정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고팔 게스트하우스의 버터치킨이 맛있다는 소문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 어디 한 번 맛을 보러 온 것이다. 예상보다 길어진 조드뿌르 일정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고팔로 갔다. 야경이 잘 보이는 곳이 아니라 버터치킨의 자태가 돋보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주문을 했다.
“버터치킨 Full에 짜파티 두 개요!” 아저씨는 밥도 추가하는게 어떻겠냐고 하셨고 허기진 우리는 밥도 시켰다. 인고의 시간이 갈수록 시장이 길어지고 이 또한 또 다른 반찬처럼 와닿았다. 그릇이 세팅되고 저 멀리 하얀 도자기에 담겨오는, 빨간 카페트에 새하얀 발을 내보이는 여배우마냥 설레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뚜껑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그것의 냄새는 좋아하기에는 너무 치명적이었다. 닭도리탕에 마살라 가루를 실수로 떨어트린 듯한 이 자연스러운 맛! 먹는 동안 감탄사만을 내놓지 못하였음은 애써 설명하지 않더라도 알 것임을. 닭 한마리에서 닭다리가 5개 이상이 나오는 뭔가 말도 안되는 상황에 직면했지만 그 정도쯤은 눈감고 식사를 즐길만 하다. 아~ 그 이름 버터치킨이여, 내 비록 조드뿌르를 뜨지만 너의 이름만은 결코 잊지 않으리. (여행 기록 중에서)
식후에 이제 떠날 조드뿌르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조드뿌르에서의 마지막 일출
우다이뿌르로 가는 버스를 타러가기전에 오믈렛 가게 앞에 있는 짜이집에서 짜이를 한 잔 했다. 조드뿌르는 자이뿌르만큼 갑작스러운 여행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이 인도에 오게 되는 계기인 만큼 북인도 여행에 있어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나 순전히 ‘버터치킨’ 때문에 방문했던 바, 파란 골목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조드뿌르의 골목은 걸은 적이 있다. 순전히 길을 잃어서였고 골목 속에는 유쾌한 사람들도 유쾌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기에 다소 감정 소모가 잦았다. 유쾌하지 못한 기억으로 조드뿌르를 떠날 뻔 했지만 아무래도 조드뿌르에 대한 기억이 좋은 것은 선샤인 게스트하우스에서의 환대와 ‘버터 치킨’의 풍미 때문이겠지. 어렵사리 예매한 버스를 타고 이제 라자스탄의 마지막 도시인 우다이뿌르로 향한다. 북인도에서 중부 인도로 가는 교두보인 셈, 다시 한 번 블루시티에 가게 된다면 하고 싶은 것이 몇 개 있다. 첫째 선샤인 게스트하우스에 가는 것. 둘째 고팔 게스트하우스의 옥상 레스토랑에서 버터치킨을 먹는 것, 그리고 셋째 내가 가보지 못한 파란 골목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