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7. ~ 2013. 3. 1.
#13. 라낙뿌르와 쿰발가르 방문 (2013. 1. 30.)
라낙뿌르, 인도
론리플래닛에 보면 라낙뿌르에 가는 버스편이 있다고(?)는 나와있다. 자인교 신도가 아닌 외국인은 12시부터 입장이 가능한데 도통 그 타이밍과 관광할 때의 시간에 쫓기기 싫어서 몬순팰리스에 갔다오는 차편을 구할 때 하쉬빌라스의 사장님한테 말했더니 어김없이 노 플라블럼이란다. 이제 익숙해질법 한데 인도 사람이 하는 노 플라블럼은 뭔가 악의 구렁텅이로 가는 지름길인 것 같아 한 번 더 인상을 쓰고 이것저것 따져보게 되곤 했다. 어찌하였든 라낙뿌르에 가고 싶었던 누나와 유적이라면 시큰둥했던 나, 그리고 누나의 룸메이트였는지 어떤 동생과 분디에서 잠깐 만났고 누나와 잠깐 동행했던 형까지 이렇게 넷은 모험에 나섰다.
가격을 저렴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기사아저씨한테 라낙뿌르만 가면 저렴한지 물어봤더니 어차피 가는 길에 있는 거니까 겸사겸사 보는게 좋지 않겠냐고 하셨다. 덕분에 겸사겸사 가게 되었는데 라낙뿌르의 마감시간이 생각보다 이르므로 시간을 생각하며 관광할 필요가 있겠다. 버스를 타고 가면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버스비는 대략 편도 75루피 정도 되는 것 같은데 택시는 인당 400루피 정도만 내면 왕복으로 편하게 다녀올 수 있다.

건축학도인 형은 여행을 하면서 인상적인 건축물이나 배경을 스케치하곤 했는데 그런 형에게 건축물은 기쁨의 대상이었나보다. 신나서 방방.

2013년 9월자 기사를 보니 내가 갔다 온 뒤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쿰발가르는 만리장성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성이라고 한다. 입구 쪽에서 표를 끊고 들어가야 했는데 경비가 그렇게 엄하지는 않았다. 입장료는 100루피. 아침에 버스로 도착하자마자 여행에 강제 동원된 형은 피곤함을 호소하며 대자연을 만끽하고 있으니 우리들보고 관광하고 오라고 했다. 특히 나에게는 사진 좀 예쁘게 찍어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쿰발가르의 내부, 예전이라면 성이라고 불렸을 법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성이라기보단 산골마을이라는 느낌이 크다. 성 안에는 사람들도 살고 있었다.
인도인 커플, 내가 지나가자 자신들의 똑딱이를 내밀며 사진을 부탁했다. 이건 내 카메라로 몰래 도촬한 사진. 좋을 때(?)다.
누나와 누나의 룸메이트. 여행지에서 여행할 때는 따로 다니는 편이라서 나는 성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올 때 성으로 올라오는 둘을 만났다. 쿰발가르에 운동하러 가는 마을 주민들과 같은 포스를 뿜어내고 있다. 쿰발가르에서 벗어나 라낙뿌르로 향하는 강원도 못지 않은 꼬부랑길에서 형이 자신이 본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해줬다. 그말인 즉슨 인도에서 운전을 할 때 필요한 것은 세 가지. 바로 튼튼한 엔진과 기똥찬 경적, 그리고 운이란다. 실로 그렇게 느껴졌던게 일차선보다는 넓은 것이 이차선보단 좁은 애매한 산길이었고 중앙선조차 없으며 가운데로 쌩쌩 달리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의 운전솜씨 때문이기도 했다.
운이 있었는지 우리는 라낙뿌르에 도착했다. 이 사진은 나중에 인화해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내는 엽서로 이용했는데 인도의 우편이 그렇듯이 50%만 한국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사원이나 유적지에 관심이 적은 편이다. 여행에 있어서 기쁨의 기준은 풍광 아니면 사람이었으니까. 지금도 조금 그렇다. 누가 죽었네 마네 하는 유적보다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 그곳을 이루고 있는 자연이 내겐 더 와닿는다.
그렇지만서도 인도에서 내가 방문한 몇 안되는 유적지 중에서 넋을 잃고 배회했던 게 바로 이곳 라낙뿌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둥은 1444개인데 이 모든 기둥이 전부 달랐다. 게다가 정교함이란… 사진을 찍을 때만 빼고는 기둥이며 천장이며 계속 올려다보곤 했다. 어쩌면 요즘 공부하느라 아픈 목이 여기서 다 망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사원을 지키는 경비 아저씨(들), 엄청난 열정으로 라낙뿌르를 종이 위에 담아내던 형의 모습을 보곤 형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퇴장시간이 다 되어 입구 쪽에서 이야기를 나눈 아저씨는 자신이 방글라데시에서 와서 일하고 있으며 가족들이 보고 싶다고 하셨다.


사진으로는 차마 이 곳의 아름다움이 다 담기질 않는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에 가만히 앉아 천장만 올려다보곤 했다.
목이 참 길게 나왔다. 아마 치킨을 먹을 때 닭목까지 요리조리 먹어서 그런지도 몰라.


5시가 되면 사원 전체에서 나가야하는 것이 아니라 라낙뿌르에서 어쩌면 가장 유명한 저 곳에서 나와야 한다. 건너편에 있는 작은 사원에서 찍은 사진.
돌아오는 길에 랄가트에 전화를 걸어 닭백숙을 주문했다. 날카로운 영어를 구사했던 형의 현란한 영어를 듣고 있는데 차 안에 있던 모두가 빵 터져버렸다. 이유는 이가 꽝꽝 얼어버릴 정도로 시원한 맥주를 주문한 것. 지금 닭을 요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냉장고에 맥주를 집어넣는 거라며. 우리는 일말의 기대도 품지 않았다. 약 한 달간의 인도 여행에서 이가 꽝꽝 얼 정도로 시원한 맥주를 먹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씻고 랄가트로 모여든 우리는 요리가 나올 때까지 맥주를 꺼내오지 말라고 했다. 자신의 요구 사항을 재확인할 정도로 형은 치밀한 사람이었다. 야경을 보며 기다리던 우리에게 슬며시 다가온 닭백숙과 목을 찌를듯 차가운 맥주는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물론 맥주를 한 잔 하면서 귀에 걸린 형의 웃음마저도 생생하다. 역시 저 양반, 행동하는 지성인이었어.
다음 여행지인 디우에서 많은 맥주와 럼을 마셨긴 했지만 영어를 잘하면 인도에서도 이렇게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구나라고 감탄했다. 그렇게 감탄해놓고도 영어 공부에 게을러 아직도 내 영어 수준은 서바이벌 영어를 탈출하지 못했다.
우다이뿌르에서 일정이 끝나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상 최대의 낙원이라는 디우에 가기 위해 버스표를 알아봤다. 여태까지도 나는 디우에서 그런 결정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