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인도] #16. Don’t worry, Be 함피!

2013. 1. 7. ~ 2013. 3. 1.

#16. Don’t worry, Be 함피! (2013. 2. 9. ~ 2. 14)

함피, 인도


유유히 달리던 버스가 호스펫에 도착했다. 디우에서 뭄바이까지의 강행군에 익숙해져 있었던 우리에게 뭄바이-호스펫 구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도로 상태가 제법 나빴다. 그럼에도 누나는 내 세상이구나 잘만 잔다. 호스펫에도 일확천금을 노리는 릭샤꾼들이 우리들을 낚으려고 했지만 꿋꿋하게 배낭을 메고 함피로 가는 버스를 찾아다녔다. 마침 인도인 남자 간호사가 자신도 함피에 가는 길이라며 우리가 찾는 버스에 함께 탑승했다. 가격은 34루피였다 누나가 그 인도인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차창으로 계속 변하는 바깥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논밭이 펼쳐진 가운데 열대의 모습처럼 야자수가 코코넛을 머금은 채로 길가에 늘어서 있었다. 버스를 타고 함피 바자르 지역에 있는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이라고 해봤자 버스 주차장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황무지였다. 바자르 지역은 성수기를 맞아 숙소 가격이 1000루피에 육박하는 곳이 많았으며 눈물을 머금고 거점을 강 건너로 옮겼다.



 

함피의 어마어마한 풍경에 배를 기다리는 내내 숨이 막혀왔고 차오르는 희열에 어쩔 줄 몰라했다.


 


 

 

 

강 건너편의 조금 외진 숙소까지 찾아봤는데 가격은 생각했던 것보다 비쌌다. 누나랑 여태껏 각 방을 써왔는데 쉐어를 해야 하나 고민을 하며 점심식사를 대충 때우고 있는데 저 멀리서 서광이 비춰왔다. 디우에서 만났던 또 다른 한국인 누나를 만난 것, 자신은 오늘 함피를 떠난다며 자신이 묵고 있는 숙소를 추천해줬고 나는 누나가 쓰던 방을 그대로 물려받아서 들어갈 수 있었다. 고타미 게스트하우스는 보트 선착장에서 제법 떨어진 편에 속했지만 숙소 상태는 만족스러웠다. 더위 때문에라도 더운 물은 기대하지도 않았고 모기망이 나를 모기로부터 지켜줄 지는 의문스러웠지만 300루피라는 가격은 나를 황홀케 했다.


 

 

씻고 함피의 풍광 속에 뛰어들었다.




 

 

디우에서 사진으로만 본 함피는 어떻게?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동네였다. 그리고 내 눈에 그 광경이 담길 때도 마찬가지였다. 엄청 거대한 돌이 여기저기에 널려있었다. 과거, 옛 왕조가 다른 왕조의 침략으로 사라져갈 때 그들의 찬란했던 왕조는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여기저기에 놓여있는 돌들은 오래된 슬픈 역사를 담고 있는듯했다.




 

 

돌이 많아서인지 서양 여행자들은 암벽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의 길을 개척하면서 안전장비도 없이 돌을 오르는 아찔해보이기도 했지만 자유, 그 자체였다.


 

 

함피를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 존재할 수 없는 풍경이라 말했다고 한다. 가이드북에서 이 표현을 봤을 당시, 어떤 광경이기에 그런 광경으로 표현했는가라는 생각 대신 문학가가 뿜어내는 문학적 허구라는 일종의 상상력이라 치부했다. 강 건너편의 돌더미 언덕을 바라보며 저기에 올라가면 다른 것들도 다 보이겠지 싶었다. 그런데 올라간 순간 더 높은 봉우리가, 또는 더 커다란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풍경은 문학가가 잘 정돈해놓은 표현이야 말로 최대한 정제된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여기저기 널린 화강암 바위는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 기약이 없다. 돌과 돌 사이에 펼쳐진 푸른 벼가 적색 태양에 익어서 고개 숙일 날만을 기다리고 있고 그 주위를 야자수가 감싸고 있는 동네에 아득하게 점으로 보이는 생명이 움트고 있다. 이 돌에 또 각각의 사연이 있지 않을까? 카파도키아의 버섯 모양 돌들이 자연이 빗어낸 것이라면 이곳의 돌들은 자연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돌 하나 하나가 품은 아우라가 합쳐져 함피라는 기상천외한 광경을 빚어냈다. 빨갛게 물들어가는 함피와 돌의 품 속에서 또 다시 그것들을 생각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와 불어가는지 알 수 없듯 이 또한 그러지 않을까?


 

 

다음 날, 근 3일간의 금주로 인해 목이 컬컬했던 우리는 바자르 쪽에는 무엇이 있나 궁금해져 배를 타고 건너왔다. 사진은 바자르 근처에 있는 비루팍샤 사원으로 함피는 함피 자체가 유적이라고 보면 된다.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서인지 바자르 입구가 많이 파헤쳐져있으며 불법적인 가건물들을 다 철거할 예정이라고 했다. 사원 근처인 바자르 지역은 성지에 들어가 육식이 금지되기 때문에 육식이나 금주를 금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거 어떻게 마셨냐고요? 까말라뿌람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 술집이 있다. 1층은 판매점이고 2층은 음식과 함께 곁들일 수 있는 모양. 버스 비용은 편도에 7루피였고 우리는 쏟아지는 태양에 시원한 킹피셔를 들이키곤 함피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유적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거의 매일 맥주를 위해 까말라뿌람까지 행차한 것 같다.


 

 

나들이를 나온 초등학교 아이들, 북인도에서는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보기 어려웠고 가난하고 불쌍한 아이들만 봐왔는데 남인도는 느낌이나 정서 자체가 다르게 느껴졌다.



 

 

인도여행 전에도 피부가 검은 편이었지만 이제 숯이 되었다. 누나한테는 아직도 일본인지 중국인지 국적을 묻는데 나에게는 경계의 눈빛을 하다가 묻는다. 베트남?


 

 

함피는 유적지마다 거리가 있는 편이고 버스 정류장이 확실치 않다. 따라서 스쿠터를 빌려 타고 다니기로 했다.


 

 

강 가의 노천 미용실, 여행 중에 머리가 길어져 누나가 적극 추천했지만 인도스타일을 소화할 수 없었던 나는 거절했다. 한 번 잘라볼 걸 싶었지만 인도 형님들의 헤어스타일은 한결 같았다.






 

 

왠지 세계지리 시간에 배운 이모작이 떠오를 정도로 인도에서는 겨울인 지금에도 벼농사가 한창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논밭을 헤매고 다녔지만 논 한 가운데 야자수가 드리워진 이색적인 풍경은 제법 신기했다.


 

 

엄청 깨끗한 스쿠터를 180루피에 빌리고 비상기름을 사서 쟁여놓고는 하누만 사원에 갔다. 도로 사정은 디우보다 훨씬 열악한 편이라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과속을 하다간 몸과 마음에 스크래치를 입기 십상이었다.




 

 

하누만 템플에 가는 방법은 스쿠터를 세워놓고 계단을 오르는 것이었는데 12시 즈음의 햇빛을 맞으며 계단을 하나씩 오르는 기분은 상쾌했다.




 

 

역시 높은 곳에 오르면 전경이 보여서 좋다.








 

 

높은 곳에선 손을 뻗으면 손 끝에 파란색 물감이 묻을 것 같다.




 

 

사원에서는 식사시간에 방문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밥을 제공해준다.


 

 

알루와 묽은 달, 절밥만큼 맛있는 밥이 없다지 않던가? 꿀맛이다. 힌디어 사전을 요란하게 찾아 밥이 참 맛있다고 말해주니 아저씨의 얼굴이 환했다.


 

 

강 건너편 돌 산에 하얀 사원이 있다. 높은 저 곳에서 보는 풍경은 어떨까하던 차에 누나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가게 되었다. 점심시간에 인접한 오전과 오전 사이, 하늘 위의 태양은 돌을 달구었고 바람은 그 사이를 기분좋게 불어제꼈다. 사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500여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있었고 하얗게 칠해진 덕택에 눈부셨다. 마음 속으로 수를 세다 포기하곤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향하던 시선을 들어올리니 강 저편의 함피와 주변의 바위산이 실로 아득하게 보인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리고 보면 볼수록 신기한 풍경이다.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그러면서도 이세상에 존재하는 역설적인 곳이야말로 함피를 설명하는 좋은 미사여구가 되지 않을까? 사원이기 때문에 신발을 벗고 돌 위에 발을 내딛자 발이 돌의 열기를 견디지 못한다. 재빨리 다른 돌에 발을 옮겨보지만 이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흐르는 바람과 멈춰있는 돌산, 그 사이를 따라 흐르는 강이 자아내는 풍경은 어떤 혹성에 잘못 도착한 듯한 착각을 자아낸다. 혹성탈출에서 사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혹성이 지구라는 걸을 알아차리는 것처럼 나도 함피가 사실 지구의 일부분임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한다.




 

 

나와는 다르게 참 유연하신 분, 오늘부터라도 스트레칭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는 가득하지만 지금까지도 내 유연성은 지지부진하다.








 

 

머리에 짐을 잔뜩 지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던 여인들.






 

강 건너 지역에는 가로등이 없기도 하고 어둠이 내리면 이곳저곳에서 자신의 손전등에 의존한 발걸음을 내딛는 관광객으로 북새통이다. 어둠이 내려 더이상 보이지 않는 함피의 풍경과 대신 하늘을 수놓는 별들을 감상하며 함피에서의 밤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