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7. ~ 2013. 3. 1.
#17. 굿모닝, 함피. 굿바이, 함피 (2013. 2. 9. ~ 2. 14)
함피, 인도

홍수로 인해 다리가 무너진 후 함피 옆을 지나는 강을 건너는 방법은 보트를 타는 것 밖에는 남지 않았다. 더구나 저녁에 일찍 보트가 끊기면 더 이상 오갈 방법이 없어지고 만다.


외국인을 제법 봤을 법한 아이는 누나의 손을 잡고 놓을 줄을 몰랐다.


함피 바자르 쪽의 마팅가 힐을 올랐다. 언덕 위에 오르자 함피의 기괴한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함피에 도착하면서부터 눈에 뜨이던 언덕이 하나 있었다. 함피에 오기 전부터 목표는 돌산 위에서 교신샷을 찍는 것이라며 공언하던 내게 부합하기도 했고 저기에 있으니 올라가봐야겠다는 생각든 것 또한 사실이다. 배를 타고 건너가 미리 세워둔 스쿠터를 타고 이들리로 아침을 때웠다. 근데 이 집, 짜이도 맛있다. 다 먹고 나서 가려는데 아이가 누나를 유괴했다. 아무튼 언덕을 열심히, 묵묵히 올라갔다. 화강암과 화강암의 연속. 두 갈래 길이 나타났을 때는 ‘어려워보이는 길이 진짜로 어렵다’는 개그를 쳐서 성공했다. 실제로 편해지고 싶어하는 전인류의 욕구에 대해 편해지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식사시간에 내 3G는 죽어있는 반면, 누나의 2G는 세상을 다 얻은 듯 날아다녔다. 부러워죽겠는데 누나가 검색창을 띄워주었다. 그게 바로 아네군디 행의 역사적 발단이었다. 뭐라고 나와있었더라. 때묻지 않은 히피들의 천국? 콜! 강 건너편의 관광을 마치고 스쿠터와 함께 강을 건너며 다시는 이쪽 편으로 건너오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귀국이 코 앞에 남아 안절부절 못하는 누나를 뒤에 태우고 달렸다. 스쳐지나가는 바람과 아랑곳하지 않고 밥을 넣어달라는 위장. 그래서 조금 속도를 높였다.
돌산과 돌산의 사이를 지나 도착한 아네군디는 작은 시골마을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우리를 아네군디로 보낸 핵심 원동력인 술과 고기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 신이시여… 역시 신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도 무신론자인데 내가 여행한 터키나 인도에서 나 자신을 무신론자로 소개하면 이 나라 사람들의 표정은 이랬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아무튼 투덜투덜거리며 근처에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옆에 앉은 프랑스 부부의 대화가 재밌었다. 모던 소사이어티를 외치며 계산을 미루던 그들과 어쩔 줄 몰라하던 종업원. 식당의 메뉴는 단촐했는데 바나나 잎에 퍼주는 남인도식 탈리, 밀즈였다. 음식을 퍼주는 애가 자꾸 관심을 보여 거슬리긴 했지만 맛은 진짜 지금까지 먹은 탈리 중에 최고였다. 누구말로는 시장이 최고의 반찬이라며?
머리가 엄청 지저분하게 산발인데 여행 중에는 이런 머리가 자유로운 느낌이 나서 좋다. 저 뻥튀기 같은 것은 남부 인도의 전통 빵이라는 모양. 인도 여행을 하며 각지에서 먹은 탈리 중에서 수준급에 속한다. 물론 마이소르에서 최고 1인자의 자리를 다시 내어주긴 했지만. 북부 인도와 남부 인도의 정식인 탈리와 밀즈는 각 지역의 풍토나 분위기에 맞게 개량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론 남인도에서 먹었던 밀즈가 월등히 앞서는 것 같았다.

본격적인 아네군디 부근 탐방, 개느님이 계셔 감성사진도 한 번 담아본다.
함피로 연결되는 강에는 한 가족이 피크닉을 나와있었다.
인도 아동 모델 포스.namaste

그렇게 사진을 잘 찍는 편은 아니지만 나의 주종목은 주로 풍경사진이었다. 하지만 색의 향연 인도에서 사진기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는 인도 사람들을 찍어보면서 인물 사진에 자신감을 느끼기도 했고 조금 더 사진을 진지하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도 빨래터의 훈훈한 풍경
얘들아 인상쓰지마라, 형처럼 주름 밉게 생긴다.



너 이렇게 생겼어.
나도 알아요.




물이 금방 차오를 것 같은 배, 사람들이 이용하는 보트가 5시 30분이면 끝이나 그 이후에 이동할 때는 저 배를 이용하곤 한다. 물론 가격도 바가지 가격으로 변신하는데 물이 차오를 때마다 물을 저렇게 퍼내면서 가는게 아슬아슬하긴 하다. 저 보트에 오토바이도 실을 수 있다면 믿겠는가?


원래 왕궁 지역을 관광하고자 거쳐가기 위해 방문하는 까말라뿌람이었지만 사실 그 곳은 좋은 곳이었다. 누나는 에어텔 밸런스를 충전할 수 있었고 우리 모두에겐 성지 함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와인샵이 있었다. 와인샵이 있다는 소리에 두말없이 간 게 벌써 횟수로 세 번째.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지나가리오. 자주 가다보니 익숙한 얼굴도 생겼다. 릭샤왈라인 바부는 대낮부터 술집에 드나들며 음주 삼매경이다. 그러더니 자신이 여기저기 관광지를 보여주겠다며 릭샤로 유인한다. 아저씨… 근데 그거 음주 운전 아니예요? 함피에서 까말라뿌람, 다시 까말라뿌람에서 함피. 와인샵 만으로는 이해득실이 나오지 않는다. 가성비가 부족하단 말이다. 하지만 이 두 개의 마을을 연결하는 길이 정말 예쁘다. 한 번은 이쪽으로 한 번은 저쪽으로 향하는 길. 누나를 뒤에 태우고 부드럽게 길을 달릴 때 햇살은 조금 덜 따갑게 내리쬐고 산들바람은 늘어선 가로수의 나뭇잎과 하이파이브를 한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시골길을 드라이브하면 이런 느낌일까? 지금도 늦은 오후의 햇살과 바람을 가르던 그 길이 생각난다. 그 길 위에는 모래 먼지와 나뭇잎, 그리고 이야기들이 남아있겠지.


무사고 안전 운전을 표방하던 내게도 결국 올 것이 왔다. 사고. 이건 내가 일으키지 않는다고 피해갈 수 있는 그런게 아니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누나가 스쿠터를 빌렸던 집에서 기름을 사고 스쿠터를 뽐내다 아네군디로 가기 위해 출발, 잠깐 우리 게스트 앞 옆쪽길에 정차해서 음악을 틀고 있었다. 스쿠터를 달리며 듣는 음악은 참 기분이 좋았다. 그 순간 후방에서 강한 압력이 전해져온다. 스쿠터가 쓰러지려고 해서 억지로 버티다보니 누나는 뒤로 떨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원인은 뒤에서 접근하던 외국인 커플의 운전미숙. 정말 화가 났는데 일단 떨어진 사람부터 구조하고 보자는 심정에서 누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렇게 심한 부상은 아닌 것 같고 스쿠터도 멀쩡해서 이 녀석들을 어떻게 요리해먹을까 눈을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런 나의 분위기를 눈치채고 인도인들이 몰려와서 진정하라고 하고 외국 것들은 스쿠터가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실수가 아니라 스쿠터의 실수란다. 브레이크로 못 멈추면 핸들을 틀어서 피하면 되잖아요… 정신적 피로가 가득하고 사고 후유증인지 조금 쑤셔 호수를 볼 때나 아네군디에 갔을 때나 말이 없었다. 누나는 피곤해지면 말이 없어진다고 했다. 그 녀석들도 언젠가 꼭 뒤에서 받혔으면 참 좋겠다^^




드디어 헤어질 날이 다가왔다. 누나는 뭄바이를 거쳐 바라나시로 가고 나는 고카르나로 간다. 아침은 도착한 날 먹었던 식당에서 다시금 먹었다. 수미상관적 구조랄까. 뭐 그런 셈 치자. 밥을 먹는 와중에 누나가 투블론 초콜릿을 주셨다. 왜인지는 모르고 단순히 죽지 말고 살아서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말인 줄 알았다. 누나는 밥을 다 먹고 고타미 건너편의 식당에서 책을 읽는다고 했고 나는 고타미에서 부랴부랴 사진을 백업했다. 사진을 백업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 출발하기 두 시간 전이 되어서야 누나가 있는 식당으로 가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우리가 그토록 헤매고 다니던 ‘시원한’ 맥주를 팔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줄이야. 그렇게 한 잔 하면서 밥을 먹다보니 시간이 잘 가더라. 누나 짐을 대신 들쳐매고 강 건너까지 배웅해준다하니 감동한 듯 수고비로 바나나까지 사주셨다. 나가는 길에는 까말라뿌람에서 한 잔 하던 바부를 만나 공짜로 호스펫까지 태워다준다는 것을 기어코 말렸다. 멈춰있는 버스에 누나가 탔고 이윽고 버스는 떠났다. 누나는 다른 사람과 헤어질 때 눈물을 잘 보이는 법이었는데 정말 해맑게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누나 역사상 가장 긴 시간동안의 동행이었다고 한다. 뭐 나도 이제 해외여행이 두 번째니까 따지고보면 누나가 가장 긴 편이었다. 다시 보트를 타며 돌아가는 길에 핸드폰을 봤다. 2월 14일 이었다. 투블론이 단 만큼 누나가 사준 바나나는 먹지도 못할 정도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