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인도] #18. 자연, 자유 그리고 고카르나

2013. 1. 7. ~ 2013. 3. 1.

#18. 자연, 자유 그리고 고카르나 (2013. 2. 14. ~ 2. 18.)

고카르나, 인도


고카르나라는 도시를 알게 된 건 우다이뿌르에서였다. 분명히 나는 주류세가 면제되는 음주의 천국 고아에 가서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돼지고기 요리와 음주, 그리고 새로운 만남이라는 향연에 젖어들 예정이었다. 숙소만 잘 잡으면 장기체류도 가능하다는 고아의 환상적인 면모만 듣다보니까 고아에서 볼만한 것들을 접어두더라도 가고 싶더라 고아.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바꿔놓은 것은 영화배우 오동주를 만난 것에서 시작했다. 우다이뿌르에서 인도인들에게 둘러쌓인 신원이 미확인된 한국인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한국 사람은 자신이 영화배우라고 주장했고 인도 사람들은 거짓말도 유분수라는 분위기였는데 마침 지나가던 내가 그분이 나온 프로필 사이트를 보여주고 오해의 소지가 풀리게 되었다. 심지어 여행을 하기 전에 부랴부랴 찍고 와서인지 실물과 거의 일치했다. 배우 분은 남인도부터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있게 추천해준 곳이 바로 고카르나였다.


가는 길이 생각만큼 순탄하지는 않았다. 함피의 여행사에 문의한 결과 Island라는 사설버스회사에서 고카르나-함피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고 했다. 누나는 보내고 유유자적 함피의 마지막을 맞이하다가 모글리 게스트하우스 앞쪽으로 갔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싸우는 모습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고 고아로 가는 사람들과 고카르나로 가는 사람들이 뒤엉켜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버스로 올라타는 순간, 아 제대로 걸렸다는 느낌이 팽배했다. 자리를 임의로 배정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뒤엉켜 올라섰고 짐을 넣는데 추가적인 비용까지 받았다. 돈독이 제대로 올랐네 이 양반들. 이렇게까지 가야 하나 하는 심정으로 좁디 좁은 싱글칸은 나의 이런 마음을 배가하였다. 얼마나 갔을까 GPS 상에서는 고카르나가 아니라고 하는데 내리란다. 네? 여기서 갈아타고 내려놓은 곳은 어느 허름한 호텔 부근, 새벽 2시였다. 암흑 속에 다른 사람들과 있다보니 버스가 두 대 왔고 운전기사는 꾸들이나 옴비치에 다이렉트로 가려면 추가 차지를 내라고 한다. 난 고카르나 타운까지 가서 걸어가는 여정을 택했고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갔다. 이 때는 반감때문에 이랬는데 그냥 다이렉트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드디어 도착한 고카르나에서 길을 한 번 잃은 뒤에야 꾸들 비치에 갈 수 있었지만 전기가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모래사장에는 바닷물이 들어와 도저히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과 새벽의 사이, 나는 노숙을 결정한다.



짐에 기대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자 해변 위의 그곳에는 어둠을 밝히는 별들이 있다. 달려드는 모기를 휘이 저어 쫓으며 별들과 이야기를 나눠본다. 그 순간 개 한 마리가 어둠 속에서 저벅저벅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밤만 되면 늑대의 본성을 드러내는 인도 개의 특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문득 누나가 사준 엄청 쓴 바나나가 생각나 하나를 떼어주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맛있게 먹었다. 개 옆에서 하늘을 바라보는데 분명 반짝 빛나던 별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별들이 스러지고 그나마 밝게 빛나는 별들만이 남아있을 무렵 나는 깨달았다. 점점 동이 트고 있구나. 어디다 소문을 낸 모양인지 개 네 마리가 저벅저벅 걸어와 나에게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나에게 바나나를 받아먹은 개는 나를 지키려는 생각인지 컹컹 짖었고 사나운 개에게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서서히 하늘이 밝아오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해변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해변을 거니는 사람도 하나씩, 나처럼 짐을 지고 헤매는 여행자들도 둘씩 나타난다. 고카르나 꾸들 비치와의 첫 만남은 이렇듯 어두컴컴한 밤 속에서 밝아져오는 서광과 같았다. 솔직히 첫 눈에 반할 그런 느낌은 아니었지만 푸근한, 고향에 돌아온 듯한 원초적 느낌이 코 끝을 감돌고 있었다. 나를 지켜준 개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오두막을 구하러 다녔고 뻥 뚫려있는 자연 속의 오두막에 짐을 풀었다.




오두막은 진짜 말 그대로 오두막이었다. 대나무와 야자나무 잎으로 만들어 당장이라도 부셔질 것 같은 이 집을 보며 론리에 나온 로빈슨 크루소보다는 아기 돼지 삼형제가 떠올랐다. 아마 이런 집도 늑대가 후~ 불어서 날아가겠지? 비가 갑작스럽게 내릴 때 빗소리를 들으며 누워있는데 맙소사 비가 샌다. 매트리스 위로도 촉촉하게 비가 내렸고 전기합선으로 불이 날까봐 스위치를 내려놓기도 했다. 이젠 뭐, 비가 오든 말든 다 틀어놓고 잘잔다. 공용샤워실은 바깥에 있는데 지금껏 보아온 시설보다 열악, 그 자체지만 씻을 수 있다는게 어딘가? 소나기가 타닥타닥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더니 빨간 깃이 인상적인 수탉 4마리가 오두막 안에 비를 피하려고 고개를 빼곰히 넣는다. 잠깐 비좀 피해갈게요! 이런 느낌? 괜히 아까 개를 괴롭히던 모습이 오버랩되어 비내리는 밖으로 내쫓았다. 로빈슨 크루소가 된 것 같다.



 

고카르나에서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다만 구름이 흘러가는 것과 파도가 치는 것과 여행자들이 헤매이는 것을 좀 더 보았다.


 

 

아침 늦게 일어나던 내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일찍 눈이 떠졌다. 씻지도 않고 카메라를 들춰메곤 바닷가로 갔다. 사람들은 걷기도 하고 요가도 하고 그냥 가만히 바다를 보며 앉아있었다. 나는 걷는 편을 택했다. 처음에는 요즘 꽂혀있는 김광석을 들으며 걸어쏙 나중엔 이어폰을 빼고 파도소리를 들었다. 평화로웠다. 어느 누구도 내가 무엇을 하든 신경쓰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만의 오롯한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해가 떠오르자 나는 그곳의 다른 사람들처럼 멀뚱히 앉아 해를 맞이했다.






 

 

구글 지도에는 안 나와있지만 고카르나에서 제법 맛있다는 나마스테 카페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정말 미친 짓이었다. 점심 때를 맞춘다고 나왔지만 확 트인 개활지에 태양은 나보고 죽으라는 듯 내리쬐고 땀이 억수로 쏟아져내렸다. 길을 찾다가 오기가 생겨 기필고 길을 개척하고 말겠다던 나의 의지는 어디로 간 건지 먼 길을 돌아 옴비치로 향했다. 가시에 찔리고 난리도 아닌 터에 도착한 옴 비치는 옴 모양처럼 생기기도 했고 심지어 이뻐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친 나는 바로 나마스떼로 들어가 맥주에 버터치킨을 정신없이 해치웠다.





 

옴비치에 있을 때 갑작스럽게 지나가는 소나기를 만났다. 소나기를 안주 삼아 킹 피셔 한 잔, 인도인들은 나에게 미처 킹피셔 값을 치루는 것을 잊었고 나는 계산서를 들고 이만큼 마셨으나 대가를 지불하겠다며 돈을 내밀었다. 2000원에 양심을 팔기는 싫었으니까.










 

 

지구별이라는 곳의 여행자들.




 

 

아라비아 해라니 괜히 감회가 새로워져 바다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원래는 그런 게 아니었는데 파도가 치는 곳에서 어물쩡거리다 발이 다 젖어버린 것. 그냥 들어가자고 들어가는데 문득 고카르나에 오기 전에 가이드북에서 읽었던 주의사항. 고카르나 쪽은 파도가 거세서 휩쓸릴 수도 있고 실제로 많이들 그런다던 글이 생각났다. 진짜 파도가 거세서 제대로 서있기 버거웠다. 밖을 걷는 것과는 다르게 파도가 밀고 당기는 것을 생각해서 걸어야했다. 세상이라는 파도 속에 타성에 젖어살아가기란 참 쉽다. 뭔가 나의 일을 하기 위해선 나 혼자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주변 사람들과 발을 맞춰 걸어야 할 필요가 있다.









 

바람이 그리 많지 않던 여느 날과 다르게 해변에 바람이 몰아쳤다. 하늘 위의 구름 집배원도 쏜살같이 날아가고 파도는 찰싹찰싹 모래사장을 때린다.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와서 어디로 불어가는 걸까? 바람이 있는 곳을 거닐며 생각해본다. 바람 같던 사람들도 생각해본다. 그와중에는 힘든 환경을 딛고 한결같은 노력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희망찬 내일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편이었다. 지극히 현실을 살아가는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던 그 사람이 힘들어할 때 나는 그 사람을 놓았던 적이 있다. 이후에 다시 만난 그 사람이 말했다.


“우리는 항상 이래. 타이밍이 안 맞아.”


우연처럼 우리가 겹쳐질 시간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 사람도 지금쯤 깨달았겠지.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닐까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살짝 화를 내며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지만 지금에서야 느낀다. 한쪽만 아프면 그건 정말 사랑이 아니구나. 적어도 진짜 사랑은 둘다 아픈 거구나라고 말이다.



 

오두막 근처 카페의 테라스에는 내 지정석이 있었다. 매일 해가 지는 시간이면 뜸을 들이며 저녁을 시켜놓곤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곤 했다. 꾸들 비치에 뿌리를 내려 옴비치와 그 외의 파라다이스 비치 같은 곳엔 자주 가지 않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고카르나에 가서 또 다른 곳에서 머물 것 같다.









 

어제 불던 바람 때문일까.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음을 직감한다. 가방을 메고 이리로 저리로 오가던 배낭 여행자들처럼 나도 나만큼 큰 배낭을 메고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고카르나 시내로 나가 점심을 때우고 그 시내를 둘러본 뒤에 헌책방에서 내가 읽던 책과 다른 책을 교환했다. 시내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고카르나 정션까지는 릭샤를 이용했다.



대자연 속에서의 5일은 인도 여행 중에서 나를 지운 5일이었다. 동행도 없었고 주문 이외에는 누군가와 접촉하지도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나를 철저히 고립시키면서 바라나시에서만큼 ‘생각’을 많이 한 곳, 그러면서도 일상과 삶 그 자체를 즐긴 곳이 아닌가 한다. 발 밑으로 철썩이던 파도와 파도소리, 떠오르는 해와 달, 그리고 하늘 위를 수놓은 별들. 인도의 개발 열풍이 고아의 해변을 지나 고카르나로 내려오고 있는데 이러한 인공의 손이 미치기 전에 다시금 방문하고 싶다. 그러길 바랐는지 몰라도 모래 사장 위에 파도 위에 숲속에 돌아갈 길을 표시하는 헨델과 그레텔처럼 나의 사념들을 흩뿌리고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