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아는 친구와 술을 먹다가 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임용식 때 초등학교에서 교감선생님이 나오시는데 꽃다발을 한아름 안겨주신다. 우리 집에선 생화 자체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편이기에 아랫 부분을 잘라 물에 담궈놓는데 친구네 집에서는 꽃을 확실하게 말려서 오랫동안 보는 편이라고 했다. 집집마다 꽃 보관법이 다르다며 감탄했었다. 더구나 친구가 사진으로 보여준 바짝 잘 마른 꽃은 꽤 괜찮아보였다. 꽃을 주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었다. 내가 가족을 제외한 누군가에게 꽃을 처음으로 준 것은 육사 시절이었는데 아직 썸이었기 때문에 장미꽃 한 송이는 비좁은 007가방 속에서 꽤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꽃이 가방 속에서 내보내달라고 할 때마다 난 옆에 있는 그녀에게 들리지 않게 꽃에게 말했다. “아냐, 아직 아냐.”
올레길은 협재의 마을을 관통해 지나가고 있었고 나 또한 그 길을 잠깐동안 걸어보았다. 골목에서 내가 만난 풍경은 건조의 순간이었다. 똑같은 벽에 기대어 있지만 그곳에서 보낸 시간에 따라 그곳이 햇빛이 얼마나 드는지, 바람은 잘 통하는 지에 따라 마르는 모양새는 서로 달랐다. 같은 것도 마르는 것이 다르는데 이것저것 다른 사람의 마음이 말라가는 시간은 얼마나 다를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