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락이라는 것은 본디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었다. 전화기가 무섭던 시절 보냈던 우체국에서 파는 엽서와 문방구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검은색 줄이 쳐져있는 편지지도 오가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실시간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었다고 생각한 쌍방향성은 편지가 비실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적용된다. 그렇게 도와주는 것이 바로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들의 기대와 기다림이다. 한 달에 한 번을 보면 많이 보는 것이었던 육사 시절, 그럼에도 연락이 끊기지 않았던 이유는 상대방의 연락을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연락을 궁금해하고 서로의 연락을 기다리면 연락은 끊기지 않는다. 그 공백은 사람이 지니고 있는 신뢰가 메운다. 가만히 앉아 편지를 보냈던 사람들의 근황을 궁금해한다. 어떤 사람과는 드문드문 연락하고 어떤 사람과는 명절에도 연락하지 않는다. 아마 그 사람들과는 편지를 기다리는 공백을 메울만한 무엇인가가 부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편지 대신에 등기가 생기고 등기 대신에 전보가 생긴 뒤로도 사람의 연락은 진보해왔다. 하지만 연락 속에 담긴 기다림의 감성은 기술의 진보와 함께 줄어들었다. 어린 시절 동화를 하나 본 적이 있다. 어떤 남자가 자신의 마음을 여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연정이 담긴 편지를 썼는데 결국 그 여자는 집배원과 만나게 되었다라나? 편지를 보내놓고 답장을 기다릴 때면 11시 즈음 우리 동네로 오는 집배원 아저씨의 오토바이 소리가 기다려졌다. 평소에는 잘만 들리던 아저씨의 오토바이 소리는 내가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릴 때면 잘 들리지 않았다. 아저씨가 혹시 오토바이가 망가져 자전거를 타고 왔다 가시지 않았을까 싶어 괜스레 1층 우편함을 뒤적거려보고 가져가지 않은 다른 사람의 우편물을 보며 저 편지를 보낸 사람은 얼마나 애탈까 싶기도 했다. 아, 그 여자는 분명 기다렸을 거다. 기다리던 중에 헷갈렸겠지. 정말 기다리는게 그 남자의 편지인지 아니면 그 편지를 기다리는 시간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