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뜻한 날씨에 12km를 걷는 것은 힘들지 않은 일이다. 반포에서 여의도, 반포에서 잠실까지 이어폰을 꽂곤 아무 생각 없이 걷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 걷는 것은 생존을 걱정하게끔 한다. 인도 여행을 위해 구매했던 형광색 배낭 안에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오리털 침낭을 넣어두었다. 이러한 걱정은 고스란히 여행자의 짐이 된다. 차가 다닐 수 있을까 의아한 좁은 길을 걷고 있을 때, 끝없이 펼쳐진 무덤을 목격했다. 배추값이 폭락해서 수확을 포기했던가 혹은 농사를 지은 사람이 아파 수확을 할 수 없게 되었던가. 방치된 밭에는 오래 전에 내린 눈이 얼어있고 침묵은 넓은 밭에 고루 펼쳐져있었다. 숙면에 방해가 될까 틀어놓았던 음악을 껐고 말 없이 밭을 지나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