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7. ~ 2013. 3. 1.
#1. 인도와의 첫 만남, 델리(2013. 1. 7. ~ 2013. 1. 8.)
인천, 한국 – 상해, 중국 – 델리, 인도
이번 여행은 우여곡절 끝에 시작되었다. 사실 1월 5일에 중국을 거쳐 네팔로 떠나 트레킹을 먼저할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포카라에서 먹을 수 있다던 맛있는 스테이크와 트레킹을 하다 찍은 점프샷을 인터넷에서 본 까닭이다. 하지만 5일 날 공항에서 나는 출국이 거부되었다. 중국을 경유하는 비행기는 24시간에 한해 트랜짓 비자가 나오는데 내 항공편은 24시간 35분을 중국에서 체류하게 되므로 중국 비자가 있어야 컨펌이 된다는 뜻이다. 저렴저렴한 표를 찾다보니 외국여행사를 경유해 표를 구매했고 그정도는 알겠거니 생각한 여행사의 배려와 나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활극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배낭을 부여잡고 인천공항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폭풍 드링킹했다. 생각보다 얼음이 많이 녹아있어서 물 같았다.
두 번째 해외여행을 좌절되는 듯 했지만 이내 표를 구하기 2013년 1월 7일, 내 무거운 64kg 몸뚱아리를 비행기에 싣게 된다. 상해를 거쳐 델리로 가는 중국 동방항공은 가격대를 생각하면 이용할 만 했다. 델리 인, 코치 아웃 엄청난 동선과 더불어 엄청난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서 와, 인도는 처음이지?’라면서 말이다.

지난 터키여행에서 들렀던 북경공항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쉽게 찾아서 이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와 조금 더 세련된 것 같은 느낌의 공항 내부 시설. 환승편을 기다리는 동안 공항을 이곳 저곳 돌아다녔다. 저쪽에서는 벌써 인도를 가는 한국 사람들이 통성명을 하고 자신들의 일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도 조금 끼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그만 두었다. 한국에서, 그리고 지난 터키에서 혼자 여행하던 버릇을 들여서 그런지 조금 버겁고 지금 당장은 내 자신조차 버거웠다.


비행기는 늦은 저녁, 델리에 도착했다. 델리에 도착하자마자 껴있는 안개 혹은 스모그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ATM에서 빠하르간지에 갈 정도의 돈을 뽑곤 어떻게 하면 빠하르간지에 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지난 번 여행보다는 계획성있게 왔지만 세세하게는 생각도 안 하고 왔기 때문에 인도의 길을 알지 못하지만 아는 척하는 사람들에게 휘둘리다 pre-paid taxi의 가격에 겁이 나서 종종 걸음을 재촉하다 한국 사람을 만났다. 나와 동갑과 한 살 어린 사람들이었는데 선이 워낙 굵어 말 그대로 상남자 스타일이었다. ‘아,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적어도 죽을 일은 없겠구나.’ 셋이서 택시를 타고 빠하르간지로 갔다.


지금은 이름 모를 빠하르간지의 모 숙소에 짐을 풀고 인도를 실감하기 전에 우리에게 먼저 찾아온 것은 허기였다. 인도에 왔으니 한 번 로컬하게 살아보자며 인도 사람들로 제법 찬 식당의 문을 호기롭게 열고 들어갔으며 인도는 역시 맨 손이라며 짜파티를 손으로 찢어봤지만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저렇게 안 찢어먹는다. 왼손은 거들뿐.

소화도 시킬 겸, 인도와 안녕이라도 할 겸. 겁도 없이 우리는 빠하르간지 근처의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델리는 전력 사정이 다른 도시에 비해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밤 골목은 어두운 편이었다. 당장 얼굴이 시커먼 인도 강도가 뛰쳐나와 갖고 있는 루피를 다 내놔, 달러는 더 좋고라고 말해도 무색할 지경이었다. 근데 이 사람들이 너무 든든했다. 그래서 나도 밤 골목을 진득하게 즐길 수 있었다.

어둠이 내린 빠하르간지(대략 10시가 지난 것으로 추정)

뉴 델리역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노상에서 팔던 탄두리 치킨과 식당에서 구한 신문지에 쌓여진 맥주를 받아들었다. 오자마자 술판이라니 지난 여행과 비교하면 놀랄 판이지만 어색어색한 사이에 킹 피셔 한 병씩은 조금 괜찮았다. 밖에서 뭘 먹어도 물갈이를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게 놀랍지만 뭐 별 문제 없었다.

빠하르간지도 기지개를 켜고 있었고 둘다 오늘 중으로 델리를 빠져나간다고 했다. 나는 클리어트립을 이용해 오늘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표만 끊어놓은 상태였지만 그들은 표가 남는 곳으로 떠난다고 했다.

뉴 델리역의 외국인 전용 창구, 깔끔했지만 일을 하는 건지 노는 건지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 나는 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두 친구들을 여유롭게 기다렸다. 겨울, 인도 여행의 성수기를 맞이해 기차표는 이미 동이 난 상태였고 그들은 라자스탄 쪽을 먼저 여행한다고 했다. 자이살메르로 가는 표를 구하곤 다시 식사를 하러 갔다.

빠하르간지 근처에 있는 모 식당이었는데 로컬화를 부르짖는 우리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자리에 의자도 없고 서서 밥을 먹는 시스템이었기에 외국 사람들은 올 엄두도 내지 못했고 한국에 김밥천국이 있다면 인도는 이곳이 아닐까 머리 속으로 생각하며 식사를 했다. 젓가락? 포크? 그런 거 없이 맨 손으로 먹었다. 밖으로 나오니 손을 씻는 곳도 있더라.


나와 동갑인 친구는 인도가 두 번째라고 했다. 능숙한 몸짓으로 빠하르간지 입구에 있는 이상한 가게에 가서 라씨를 달라고 했다. 사전 공부를 안한 덕택에 라씨가 뭔지 몰랐던 나는 그 친구가 내민 스테인 잔에 들어있는 정체모를 하얀 액체를 맛보곤 감탄했다. 유제품 광인 나에게 너무도 완벽한 음료였다.



나는 네 시에 뉴델리역에서 떠나고 그들은 아홉시에 올드델리역에서 떠나는 일정이라 델리에서 시간을 조금 보내기로 했다. 목표는 델리 골목과 붉은 성, 그리고 자마 마스지드! 갈 때는 걸어가고 올 때는 버스를 한 번 타보기로 했다.


뉴델리역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누군가는 이 곳을 떠나는 여행을 하고 있을 테고 누군가는 이 곳으로 떠나왔겠지만 모두의 공통점은 떠나왔다는 것. 그 떠나옴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일종의 용기다.




인도의 골목에는 아마 이것이 진짜 인도이지 않을까? 라는 삶의 터전이 펼쳐져있었다. 풍성귀를 파는 아빠와 아들, 수많은 스쿠터와 자전거, 그리고 길을 가는 사람들.


자마 마스지드



자마 마스지드에서 붉은 성으로 가는 길은 조금 외진 것 같았다. 사람들이야 워낙 많았기에 걱정도 안했지만 밤에 온다면 불빛 하나 없을 것 같았다.






붉은 성에서 서로의 시간을 가졌다. 누군가는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듣고, 누군가는 다음 여행의 일정을 생각하고, 나는 붉은 성을 찾아온 사람들을 사진에 담았다.


내 기차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걸음을 재촉했다. 인도는 신호등이 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태라 처음에 길을 건너기가 조금 어렵다. 요령이 붙으면 인도 사람들이 건널 때 따라 건넌다. 그리고 익숙해지만 인도 사람 마냥 천천히 도로를 건넌다. 버스를 타고 빠하르간지로 돌아와 숙소에 맡겨둔 짐을 찾아들고 이별 라씨를 한 잔 하고 뉴델리역으로 갔다.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은 인도 여행을 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의 배웅을 받고 유유히 떠나려고 했지만 인도는 녹록치 않았다. Incredible India, 정말 누가 만들었는지 인도를 표현하는 가장 완벽한 말이다.